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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평점 :
명문대를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신참 정신과 의사 파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력과 재정이 열악한 코네티컷 주립 정신병원에 자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6살에 입원한 뒤 30년 동안 수용돼있는 조라는 환자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의 주목을 끈 건 단순히 긴 입원 기간뿐 아니라 확실한 병명조차 없다는 점과 함께
그동안 그를 담당했던 의료진들이 미치거나 자살했다는 기이한 사실이었습니다.
병원장과 상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담당의를 자처한 파커는 치료 첫날부터 충격에 빠집니다.
조는 진료 서류상의 기록이나 떠도는 소문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작품의 진짜 알맹이는 위에서 소개한 줄거리 다음 부분부터 시작됩니다.
한 달 가까이 조와 면담을 나눈 파커가 그의 처치를 놓고 병원 측과 충돌하는 이야기,
30년 전 최초로 조를 담당했던 의사와의 격론 끝에 다다른 파커 자신도 믿을 수 없는 결론,
6살의 조가 겪었던 야경증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부모를 찾아간 일,
그리고 조의 비밀을 알게 된 뒤 찾아온 끔찍한 혼란과 패닉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출판사조차 이 뒷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소개하지 않고 있어서
이렇듯 두루뭉술하고 감질날 정도로만 서평에 담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다 읽은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주 오래 전에 푹 빠졌던 ‘환상특급’이란 드라마였습니다.
매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도 나름 반전에 대비하곤 했지만
번번이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는 듯한 충격적인 엔딩에 놀라움과 소름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 환자’는 그만큼 ‘환상특급’에 잘 어울리는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러 분위기가 살짝 가미된 메디컬 스릴러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솔직히 어디로 튈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30년 간 갇혀있던 소시오패스의 탈출기? 또는 이후의 연쇄살인극?
그렇다면 주인공인 의사 파커의 역할은 뭘까?, 등 여러 가지 궁금증이 일었는데,
환자도 의사도 정신과 쪽 인물이라 그런지 그 분야의 ‘모호한’ 묘사들이 계속 이어져서
아무래도 소시오패스나 연쇄살인보다는 심리 스릴러로 흐를 것 같은 예감이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선사한 막판 반전은 그야말로 ‘환상특급’을 능가하는 충격적인 것이었고,
혹시 잘못 읽은 건 아닐까, 싶어 몇 번이고 반전이 등장한 대목을 되읽을 정도였습니다.
워낙 극단적인 반전이라 독자에 따라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릴 것이 분명하긴 하지만
어느 쪽이 됐든 깜짝 반전이 전해 준 충격의 강도는 엇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론 ‘충격’ 다음으로 받은 인상이 ‘당황과 허탈 사이’쯤 됐는데
호러와 공포 쪽 취향의 독자라면 꽤 환호할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족으로...
전반적으로 안정적이고 매끄러웠지만 결정적 대목에서 살짝 모호했던 번역이 아쉬웠고,
페이지마다 글씨 진하기가 달랐던 인쇄 부분의 오류는 계속 눈에 거슬렸습니다.
낯선 이름의 신생 출판사로 보이는데 응원과 함께 좀더 세심한 마무리를 바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