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미우라 시온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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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마사 & 등 단 두 작품밖에 읽지 못한 미우라 시온이지만

처음 접했던 배를 엮다의 깊은 인상 덕분에 오래 전부터 관심 작가로 분류해놓았습니다.

관심에 비해 읽은 작품이 별로 없어서 좀 머쓱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신간인 그 집에 사는 네 여자에 대해선 각별한 호기심이 생긴 것이 사실입니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혈연 아닌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행정구역상 도쿄에 속하지만 도심도 교외도 아닌 애매모호한 동네에 자리한 마키타 가()

규모는 호화롭지만 동네아이들이 귀신의 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낡고 오래된 양옥집입니다.

고고하고 제멋대로인 70대 쓰루요와 자수 전문가인 37살의 독신 사치 모녀만이 살던 그 집에

보험회사 선후배 관계인 유키노와 다에미가 특이한 인연을 통해 들어와 살게 됩니다.

 

성격도, 인생관도, 사랑관도 전부 제각각이라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이기만 한 네 여자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겪는 소소한 해프닝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는 딱히 기승전결을 갖춘 것도 아니고 큰 갈등이나 사건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늘 삐거덕거리던 쓰루요-사치 모녀가 차츰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이야기도 있고,

20~30대의 독신인 사치-유키노-다에미의 33색의 사랑이 굴곡 있게 그려지기도 하고,

심지어 난데없는 호러+판타지 코드가 끼어들어서 독자들을 잠시 멍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뼈대는 가족이었다면 충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를 네 여자가 오히려 남남으로 만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함께 산다는 것의 기쁨과 위안을 발견하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름을 또 이 녀석과 나란히, 나고 자란 동네에서 보내고 있다.

(중략) 수없이 반복된 나날 끝에 얻은 것이 이거라면, 이렇게 살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위의 문장은 미우라 시온의 마사 & 에 나오는 구절인데,

성격도 처지도 다른 두 노인이 가족 이상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데다

동네 구석구석을 흐르는 운하 위로 배가 떠다니는, 도쿄지만 도쿄 같지 않은 동네가 배경이라

이 작품과 여러 모로 비슷한 인상을 지닌 작품입니다.

거기다가 누군가에게서 얻는 기쁨과 위안을 담은 담백한 두 줄의 문장을 보고 있으면

마키타 가()의 네 여자 역시 비슷한 기분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추측하게 됩니다.

 

큰 사건도 없이 평평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뭔가 눈길을 사로잡는 힘은 분명 있습니다.

다만, 잔잔해도 확실한 기승전결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에 야박한 평점을 주고 말았는데,

혹시 비슷한 실망감을 느낀 독자라면 배를 엮다를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디지털 사전과 인터넷에게 밀려난 종이사전 편집부 멤버들의 분투를 그린 작품으로

특별히 새롭거나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우라 시온이 일본에서

인간을 잘 그리는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한국판 표지가 너무 장난스러워서(?) 일본 원작의 표지를 살펴봤는데,

문고판은 좀 뜬금없었지만 하드커버판의 표지는 그대로 가져왔어도 괜찮았다는 생각입니다.

한국판 표지는 미우라 시온 작품임을 몰랐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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