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8년 전, 16세 소녀 테사는 시신과 유골들과 함께 묻혀 있다가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습니다.

사람들은 극적으로 살아남은 테사에게 블랙 아이드 수잔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그녀의 증언으로 체포된 테렐 굿윈이 사형선고를 받은 지 17년이 지난 현재,

테사는 무고한 테렐이 자신 때문에 사형수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특히 최근까지도 진짜 범인으로 보이는 자의 흔적이 끊임없이 주변에서 발견되곤 했는데

그 일들은 내내 그녀의 죄책감과 공포심을 계속 부추겨왔습니다.

결국 테사는 법과학자 조애나와 변호사 빌의 도움을 받아 진실 밝히기에 나서기로 합니다.

 

줄거리만 보면 선명하고 깔끔한 진범 찾기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작품은 다소 몽환적인 호러 분위기가 감도는 지독한 심리 스릴러입니다.

재판을 앞둔 시점에서 테사가 정신과 의사와 나눈 면담을 그린 17년 전의 과거 챕터와

테렐의 사형집행일을 앞두고 테사의 진실 찾기를 그린 현재 챕터가 번갈아 등장하는데,

과거와 현재 모두 간유리로 들여다보듯 모호함이 깃든 문장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호함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근원은 오랫동안 테사의 뇌리를 잠식하고 있는 수잔들’,

즉 구덩이 속에서 테사와 뒤엉켜있던 시신 한 구와 여러 명의 유골들입니다.

수잔들은 꿈에서건 현실에서건 수시로 테사 앞에 나타나 뭔가를 강렬하게 요구합니다.

환청이나 다름없는 수잔들의 목소리는 18년이 지났어도 너무나 생생했기에

테사는 말짱한 제정신일 때조차 뭔가에 홀려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 생매장됐던 어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의사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테사가 그 또래답지 않은 영악한 태도를 보이거나 애매한 화법을 구사하는 장면이라든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누군가 자기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확신하는 테사의 공포감,

그리고, ‘진범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라는 강박감이 적잖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사건 자체보다는 모호함과 몽환적 분위기가 더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물론 테사가 법과학자 조애나, 변호사 빌과 함께 진실과 진범을 찾는 여정도 함께 전개되지만

그런 대목을 그린 미스터리는 심리 스릴러 서사에 비하면 분량과 비중 면에서 소소할 뿐이고

막판에 드러난 진상 역시 명쾌하고 깔끔함 대신 ?”라는 의문을 더 많이 느끼게 합니다.

 

고백하자면, 이 모호함과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도중에 몇 번씩 책장을 덮으려 했는데,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될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결국 끝까지 달리긴 달렸지만

출판사 소개글처럼 충격적이고 강렬하며 완벽하게 독창적이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읽은 건지 머릿속에 명료하게 정리되지도 않았습니다.

호러 분위기가 깃든 심리 스릴러가 취향에 맞는 독자라면 꽤 열광할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론 어지간히 힘든 책읽기를 경험한 작품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언젠가부터 대놓고 심리 스릴러라고 홍보하는 작품은 일부러 멀리해왔는데,

명확하고 선명한 서사를 좋아하는 제겐 블랙 아이드 수잔같은 지독한 심리 스릴러는

결코 맞지 않는 옷이란 걸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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