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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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여행의 관광버스 짐칸에서 한 아이의 토막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휴게소에서 사라진 아버지 김석일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그를 추적한다.

김석일은 예상 밖으로 빠르게 검거되는데,

검거되기 직전 어떤 빌라에 침입해 한 남자를 중태에 빠뜨릴 정도로 난도질한다.

아이의 시체에서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사건의 잔혹성으로 전 국민이 주목하는 가운데

담당 형사 박상하는 자신의 비극적인 가정사를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한편 김석일과 이혼하고 떠났던 전처 정지원이 돌아오며 사건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2013년에 출간된 더블이후 네 번째로 만난 정해연의 작품 패키지입니다.

한국 장르물 작가 가운데 Top Pick까지는 아니어도 신간소식에 귀 기울여지는 작가인데

어린 아이가 토막난 사체로, 그것도 관광버스 짐칸에서 발견된다는 충격적인 설정 때문에

지금 죽으러 갑니다이후 2년여 만에 다시 한 번 그녀의 작품과 만나게 됐습니다.

 

사실, 어린 아이가 희생자인 장르물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심정을 자아내기 마련인데,

그것도 너무나 참혹한 방식으로 살해되고 유기된 탓에

도대체 무엇이 그런 범죄의 원인이 된 것인지, 누구의 소행인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줄거리 소개대로 범인은 일찌감치 아이의 아버지 김석일로 특정됩니다.

아이가 오랫동안 폭력에 노출됐던 정황들이 드러난 것은 물론

그 폭력이 막장에 가까웠던 부모의 결혼생활에 기인했다는 점도 주위의 진술로 밝혀지면서

모든 정황이 김석일이 범인임을 가리키지만 그는 자백은커녕 입을 완전히 다물어버립니다.

 

아이를 참혹하게 살해할 만한 정확한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왜 굳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휴게소와 버스를 범행 공간으로 이용한 것인가?

그가 입을 꾹 다문 것은 무슨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인가?

 

작가는 박상하의 입을 통해 아이를 죽인 건 김석일 뿐일까?”라는 의문을 자주 제기합니다.

, 김석일 외에도 적잖은 주변인물들이 공범 내지는 방치의 역할을 했다는 뜻인데

마지막에 드러난 진실과 무관하게 이 의문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로 보입니다.

알면서도 외면했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방치했거나,

물리적인 폭력만 휘두르지 않았을 뿐 실은 공범이나 다름없는 자들에 대한 분노라고 할까요?

 

3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이라 금세 마지막 장까지 완주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해연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어설프거나 아쉬운 대목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표지 뒷면의 카피와 초반부 감식반장의 진술 속에 분명 일곱 토막이라고 돼있던 사체가

몇 페이지 뒤에 등장하는 부검 결과지에는 여섯 덩어리로 표기된 점이라든가,

동행했던 관광객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참혹하게 짓이겨진 아이의 시신을

굳이 어머니 정지원에게 확인하라고 권하는 이해 못할 박상하의 태도는 애교(?)라고 쳐도

미스터리 서사 전반에서 다소 어이없는 아마추어 식 오류가 종종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살인사건을 맡은 형사라면 당연히 해야 될 일 - 범행과 유기 수법 조사,

시신의 정체 확인, 혐의점이 있는 자의 범행당일 행적 조사 등 - 을 방기한 것은 물론

미스터리 독자 수준만 돼도 금세 눈치 챌 일을 마치 대단한 발견인 양 깨우치는 등

박상하의 행적은 담당형사라기보다는 범인 프로필 분석가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 본인 역시 가족폭력의 상처를 지닌 것으로 설정된 탓에

박상하는 수사 내내 객관적인 태도 대신 김석일 가족에게 자신의 가족을 투영하곤 하는데

이 역시 형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망각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어떻게 봐도 주제를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가장 궁금했던 범행 이면의 진실에 대한 막판 설명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웃음이 나왔고

범행 수법과 과정 역시 그런 게 가능한가?”라는 반발심만 일으키는 변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몇몇 결정적 장치들은 끝까지 회수되지 못한 채 의문으로 남아버려서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름 기대가 많았던 작가의 작품이라 어쩌면 실망감이 더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패키지는 설정만 강렬했을 뿐 정작 미스터리는 수준 이하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취향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도 있으니 다른 독자들의 서평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제 평점은 악평에 가깝지만 인터넷 서점엔 별 5개를 준 서평이 훨씬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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