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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찾는 아이들
시모무라 아쓰시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20년 11월
평점 :
시모무라 아쓰시는 2019년 출간된 ‘생환자’(피니스아프리카에)로 처음 만났습니다.
‘열려 있는 폐쇄 공간’인 거대 설산을 배경으로 한 산악 미스터리라는 독특한 장르인데다
“누가 범인?”이란 미스터리와 함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또는 죄책감’도 함께 다룬 작품이라
꽤 깊은 인상을 받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체 찾는 아이들’은 ‘생환자’와는 결도, 느낌도 전혀 다른 작품이라 살짝 놀랐습니다.
끔찍한 연쇄살인범, 그가 어딘가 감춰놓은 시체, 시체 찾기에 나선 중고생 유튜버 등
등장인물과 사건 설정만 봐도 전작과는 서사의 무게감이나 톤 모두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불면 훌훌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문장들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긴 했지만
말초적인 재미 면에서는 강한 조미료가 뿌려진 듯 흥미진진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8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22살 아사누마 쇼고가 법정에서 충격적인 진술을 합니다.
7명은 자신이 죽인 게 맞지만 미즈모토를 살해한 진범들은 따로 있다면서
“추억의 장소에 진범 한 명의 시신을 숨겼다. 자, 이제 시체 찾기의 시작이다!”라고 말입니다.
미즈모토 살해범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다가 강제 휴직을 당한 여형사 오리카사 노조미는
자신의 추리가 맞았다며 애초 용의자로 꼽은 3인조에 대한 독자적인 수사에 나섭니다.
한편, 등교 거부중인 중학생 유튜버 소타는 같은 또래의 인기 유튜버 니시얀으로부터
여름방학을 맞아 ‘우는 아이의 숲’으로 시체 찾기에 나서자는 제안을 받곤 흥분합니다.
또 한 명의 인기 유튜버 고교생 세이, 숲 인근에 사는 소녀 카호가 가세한 가운데
들뜬 기분으로 시체 찾기에 나섰던 소타는 얼마 안 가 끔찍한 악몽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경찰과 전문가들이 아사누마의 폭탄발언을 연쇄살인마의 헛소리라며 무시하는 상황에서
수사 초기부터 미즈모토만은 아사누마의 희생자가 아니라고 확신했던 노조미가
탐문과 압박을 통해 재수사를 하며 갖은 위기를 겪다가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가 한 축이고,
‘우는 아이의 숲’으로 시체 찾기에 나선 중고생 유튜버들의 이야기가 나머지 한 축입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선 아사누마가 언급한 ‘추억의 장소’가 어디인지 찾아내려는 움직임과 함께
이른바 ‘시체 찾기’의 광풍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말하자면, 한쪽에선 진범 찾기가, 한쪽에선 시체 찾기가 벌어지는 형국인 셈입니다.
어디에서 접점을 이룰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던 두 축의 이야기는
(약간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막판에 이르러 교묘한 트릭과 함께 하나로 합쳐집니다.
다소 가볍고 쉬워 보이는 노조미의 수사도 아쉬웠고,
‘시체 찾기’라는 미션과 달리 10대 성장통에 주력한 듯한 유튜버들의 이야기도 아쉬웠지만
두 축의 이야기가 합쳐지는 대목에서는 제법 팽팽한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판에 밝혀진 아사누마 폭탄발언의 진위와 미즈모토 사건의 진실 역시
사뭇 놀라운 전개와 엔딩으로 이어진 덕분에
일반적인 연쇄살인마 미스터리와는 차별화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을 두 가지 정도만 꼽자면,
우선은 서사와 이야기의 두께가 분량에 비해 많이 가볍게 느껴진 점입니다.
노조미의 수사는 너무 쉬워 보였고 그녀가 겪는 위기도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튜버들의 ‘시체 찾기’는 캐릭터 소개를 위한 ‘기초공사’에 과도한 분량을 할애한 나머지
지루하거나 사족 같은 내용이 많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는 툭하면 등장하는 ‘작가의 열정적인 주제 강의’입니다.
연쇄살인마의 탄생과 범행심리,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10대의 불안정한 내면 등
작가는 적잖은 분량을 통해 주제와 메시지를 설파하곤 하는데,
사실 이런 대목들은 공감보다는 강요처럼 읽힐 때가 더 많았다는 생각입니다.
다소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꽤 독특한 재미를 지닌 작품인 건 분명합니다.
또, 이야기 자체보다 설정의 힘이 더 매력적인 작품이란 생각인데,
이런 인상은 전작인 ‘생환자’에서도 비슷하게 받았던 터라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다음에는 어디로 튈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 한국에는 ‘생환자’와 이 작품밖에 소개가 안 된 상황인데
일단은 관심을 두고 신작 소식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