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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파크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2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전작인 ‘클로저’부터 LA경찰국 미해결 사건 전담반 요원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해리 보슈가
이번에는 13년 전인 1993년,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고 미제로 남긴 실종 사건에 뛰어듭니다.
아무래도 남들이 남긴 미제 사건에 비해 수사에 임하는 태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수사의 물꼬가 트이는 바람에
보슈로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과 의심을 지닌 채 수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13년 전, 보슈는 실종된 마리 게스토의 시신은 물론 흔적조차 찾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했고
그 뒤로 시간이 날 때마다 사건 파일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놓친 것들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심지어 범인이라 확신한 한 남자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종종 그를 심문하기도 했는데
그런 보슈에게 어느 날 갑자기 진범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진범이 최근 화제가 된 ‘에코 파크 토막살인범’ 레이너드 웨이츠란 걸 알게 된 보슈는
스타 검사 릭 오셔의 중재로 웨이츠의 심문에 참여하게 됩니다.
웨이츠는 마리 게스토 외에 여러 건의 살인을 자백하고 시신들이 묻힌 곳을 알려주는 대가로
사형을 면제해줄 것을 요구하며 태연히 마리 게스토를 살해한 정황을 늘어놓습니다.
외운 걸 읊듯 청산유수처럼 내뱉는 그의 자백에 보슈는 오히려 의심이 치솟았고
검사장 선거를 앞두고 뉴스의 중심에 서려는 검사 릭 오셔의 의도도 불순하게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가 터지면서 보슈와 그의 파트너 키즈는 최악의 위기에 봉착합니다.
13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낸 뒤에야 나타난 진범,
그것도 자신이 미제로 남긴 사건의 범인이라면 보슈 입장에선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속엔 그만의 ‘범인’이 따로 있는 상태인데다
스타 검사 릭 오셔가 ‘모셔온’ 레이너드 웨이츠라는 진범은
아무리 봐도 동기나 수법 면에서 마리 게스토 사건과는 거리가 먼 소시오패스라
보슈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유족들에게 13년 만에 진실을 알릴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 같은 건 아예 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보슈의 ‘촉’은 이 이상한 형량 거래 이면에 숨은 그 뭔가를 향해 들끓기 시작합니다.
보슈는 이번에도 역시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맞아 ‘재택근무’라는 족쇄를 차게 됩니다.
그동안 여러 번 수사에서 배제되거나 징계를 맞곤 했던 탓에 그 족쇄가 새삼스럽진 않지만
스스로 매듭지어야만 하는 미결 사건 수사 중의 족쇄는 그에게 꽤 큰 분노를 자아냅니다.
더구나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13년 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이후에 발생한 끔찍한 연쇄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뒤 보슈는 자책에 빠집니다.
그런 탓에 보슈는 그 어느 때보다 다분히 감정적인 상태에서 수사에 임하게 됐고
파트너인 키즈는 물론 FBI요원 레이철 월링에 의해 수차례 제동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의도했든 아니든 악을 벌하기 위해 스스로 악이 되는 걸 주저하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보슈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정도로 우여곡절과 위기를 겪긴 하지만
사건 자체도 흥미롭고, 크고 작은 반전들이 곳곳에 배치돼있어서
재미 면에선 그 어떤 작품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또, 보슈의 파트너 키즈 라이더와 FBI요원 레이철 월링의 활약도 매력적이었는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거나 족쇄에 묶인 보슈를 위해 헌신적으로 뛰어다니기도 했지만,
동시에 걱정과 고뇌를 떠안겨 보슈를 안절부절 못하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더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키즈와 레이철의 이야기가 사건 못잖게 눈길을 끌었던 점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보슈가 계속 미해결 사건 전담반에 남아있을지 궁금해졌는데,
다음 작품인 ‘혼돈의 도시’를 오래 전에 읽긴 했지만 거의 아무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탓에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으로 처음 읽듯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 다음 작품이 홍콩을 무대로 보슈가 인생 전환점을 맞는 ‘나인 드래곤’이다 보니
그 전에 보슈에게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혼돈의 도시’라는 제목부터 심난해 보여서
벌써부터 기대보다는 우려가 살짝 앞서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