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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발소
사와무라 고스케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0년 12월
평점 :
7편의 단편이 수록됐지만, 실은 3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앞의 3편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다룬 전형적인 단편인데 반해
뒤의 4편은 화자가 바뀌거나 형식만 바뀔 뿐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조난당한 두 대학생이 깊은 밤 폐가 같은 거리에서 발견한 뜬금없는 심야 이발소를 무대로
수수께끼를 풀 듯 미스터리를 하나하나 파헤치는 이야기 (표제작 ‘밤의 이발소’),
한밤중 해무(海霧)가 잠식한 마을에서 벌어진 기이한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인해 벌어진 끔찍한 죽음의 비밀과 진실을 다룬 이야기 (‘하늘을 나는 양탄자’),
도플갱어를 찾아달라는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는 소년들의 음모(?)에 말려든 주인공이
그들과 함께 폐공장을 뒤지다가 도플갱어의 진실과 마주치는 이야기 (‘도플갱어를 찾아서’) 등
앞의 3편은 각각 일상 미스터리, 판타지가 살짝 섞인 살인극,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독특하고도 개성 있는 단편들입니다.
그에 반해 뒤의 4편은 편집자의 말대로 “살짝 동공이 흔들릴 정도로” 기괴한 연작 단편인데,
100년도 넘은 대저택에서 시작된 ‘보물찾기’가 괴담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는 덕분에
이른바 ‘기괴 환상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오싹하고 기이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어떤 소재가 괴담에 차용됐는지까지는 밝힐 수 없지만,
연작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작품 제목이 ‘잠자는 공주를 파는 남자’라는 걸 생각해보면
대략 어떤 분위기의 괴담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건 작가가 ‘밤의 이발소’로 ‘2007년 미스터리즈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전 해인 2006년 ‘잠자는 공주를 파는 남자’로 응모했다가 탈락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사위원인 아야츠지 유키토는 ‘잠자는 공주를 파는 남자’에 대해 불만과 혹평을 남겼지만
1년 후에 같은 작가가 쓴 ‘밤의 이발소’를 수상작으로 꼽은 뒤에는
“‘잠자는 공주를 파는 남자’를 쓴 사람이 썼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의 작품으로, 이런 놀라움은 아주 마음에 든다. 다채로운 글쓰기 역량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라며
전혀 상반되는 호평과 극찬을 날렸다고 합니다.
앞쪽의 수록작들을 읽으며 꽤 독특한 단편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가
갑작스레 ‘기괴 환상소설’로 분위기가 확 달라져서 다소 아쉽긴 했지만,
분명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하고도 향이 무척 강한 간식처럼 읽힌 것도 사실입니다.
앞의 3편은 그 나름대로의 개성과 의외의 결말들을 갖고 있어서 매력적이었고,
뒤의 4편은 마치 20세기 초반 일본의 괴담 스타일 미스터리 같은 자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이야기를 한 곳으로 수렴시키는 마지막 수록작 ‘에필로그’는
반전과 함께 이야기가 끝났어도 전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특별한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다만, 독자에 따라 앞의 3편은 좀 싱겁게 느낄 수도 있고,
뒤의 4편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이야기에 당혹감만 느낄 수도 있는데,
‘편집 후기’의 부제가 “몽환적이고 어딘가 석연치 않은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그런 느낌들이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인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