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회귀천 정사저녁싸리 정사와 함께 일명 화장(花葬) 시리즈로 불리는 단편집입니다. ‘꽃으로 장사 지내다라는 뜻의 화장(花葬)’은 글자에서 연상되는 애잔한 이미지와는 달리 꽃을 모티브로 삼되 참혹한 살인사건과 그 이면에 숨은 더 참혹한 진실을 상징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시리즈 타이틀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고 사나흘 정도 무척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어지간한 이야미스(イヤミス, 불쾌한 기분이 남는 미스터리)’를 읽고도 끄떡없던 저였지만 회귀천 정사는 이야미스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수록작마다 살인사건(또는 기이한 죽음)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진실을 밝히는 형식이긴 하지만, 살인이나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꽃들의 향연이 주는 묘한 위화감과 끈적거림, 그리고 밝혀진 진실 속에 담긴 어이없음, 망연함, 안타까움 등 복잡한 감정들이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우아하거나 애틋하거나 우수 어린 문장들로 그려진 탓에 마치 악마파가 그린 순수한 풍경화 또는 김동인의 광염소나타속의 광기를 살갗으로 직접 느낀 듯한 그런 종류의 불편함과 불쾌감을 맛봤다는 뜻입니다.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다이쇼 시대(1921~1926)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꽤나 혼란스럽고 어두웠던 시대인데, 그런 시대적 배경 역시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무겁고 미묘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이런 분위기를 더 강렬하게 만듭니다. 글을 모르는 기녀들을 위해 편지를 대신 써주던 대필가, 가족들에 의해 10살에 팔려와 성 노예로 전락한 16살 어린 기녀, 어긋난 남녀 사이에 끼어 정신적, 육체적 메신저가 돼야 했던 젊은 야쿠자, 어머니의 살인에 관한 유년의 모호한 기억 때문에 고통 받다가 비참한 진실을 알게 된 남자, 그리고 두 차례의 정사(情死) 미수 끝에 두 여자를 죽게 만들고 자신도 자살한 천재 가인 등 한껏 일그러지고 비틀어진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각 살인사건(또는 기이한 죽음)의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입니다. 살인범들은 딱히 자신이 죽인 피해자들에게 원한이나 복수심을 가졌던 게 아닙니다. 오히려 살인범들의 애증은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었고, 그 애증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살인이라는 끔직한 행위를 동원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서, 누군가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다른 그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던 살인범들의 행각은 여느 연쇄살인범의 그것보다 더 잔혹하고 용서받지 못할 짓이지만, 독자는 그 살인범의 동기와 행위에 동조하고 공감하게 되는 이상야릇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동조와 공감이 다 읽은 뒤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초래하는 주범인 게 사실입니다.

 

화장 시리즈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각 작품마다 예외 없이 꽃이 등장합니다. 등나무꽃, 도라지꽃, 오동나무꽃, 연꽃, 꽃창포 등이 그것인데, 때론 주제나 상징으로, 때론 사건의 단서로 등장하는 꽃들에 대한 작가의 설명을 요약해보면,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꽃입니다. 피기 전에 버려진 꽃, 진흙탕에 짓이겨진 꽃, 피로 그린 꽃그리고 트릭으로서의 꽃, 복선에 사용된 꽃, 죽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꽃, 흉기가 된 꽃.”

 

주인공이 꽃이란 설명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작품에 따라 맞기도, 아니기도 합니다. ,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꽃이 있다는 것도 작품에 따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꽃이란 사실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해 미리 거부감부터 갖는 독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각 수록작의 정서를 대변하는 상징정도로만 여겨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뒤늦게 렌조 미키히코와 처음 만났던 작품은 4살 소녀의 교살 사건을 다룬 백광이었는데 아직 렌조 미키히코를 만난 적 없는 독자라면 백광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작품 역시 대담한 설정과 서정성 넘치는 문체로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었던작품인데, ‘백광이 마음에 든다면 그 후에 화장 시리즈를 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회귀천 정사에 수록되지 않은 나머지 세 편의 화장 시리즈는 후속작인 저녁싸리 정사에 수록돼있습니다. 당연히 관심이 가는 작품이지만 연이어 읽기에는 좀 힘든 게 사실이라 언젠가 회귀천 정사의 불편함과 불쾌함이 다시 그리워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합니다.

 

사족으로...

딱히 어디라고 흠 잡긴 어렵지만, 수시로 번역의 아쉬움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직역의 문제 같기도 하고, 단어 선택의 문제 같기도 하고, 왠지 부자연스럽게 읽히거나 한국어인데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읽느라 제가 오독하거나 잘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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