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쇼핑몰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 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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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개들이 식사할 시간으로 처음 만난 강지영의 첫 인상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편혜영의 아오이 가든’,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 오츠이치의 ‘ZOO’가 떠오를 정도로

수록된 단편 모두 호러와 판타지의 기운이 강한 작품들이었는데,

의도된 불쾌감이 끈적끈적 묻어나면서도 재미나 주제 면에서도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만난 페로몬 부티크는 중간도 못 가서 포기했는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너무 가벼워보였던 이야기와 문장들에 실망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개들이 식사할 시간의 강지영과 동명이인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그런 탓에 강지영의 작품을 멀리 했던 게 사실인데,

2020년에 출간된 장르물 중 못 읽은 작품들을 찾다가 눈에 띈 게 살인자의 쇼핑몰입니다.

일단 제목은 눈길을 확 끌었지만 페로몬 부티크의 전철을 밟을까봐 주저했던 작품인데,

분량도 짧고 해서 일단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큰 부담 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은밀하고 조직된 무자비한 킬러들, 또 그들에게 일감과 무기를 제공하는 베일에 싸인 배후,

그리고 탐욕에 찌든 사악한 인물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은

권총 한 자루만 나와도 비현실적인 한국에선 어쩌면 판타지에 가까운 허무맹랑한 구도지만,

작가는 정교한 사건 설계와 생생한 캐릭터의 힘으로 꽤 그럴듯한 리얼리티를 구축합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요약하면 킬러들의 밥그릇 싸움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헤게모니와 이익 독식을 위한 킬러 조직 간의 잔혹한 전쟁 속에서

삼촌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내고 복수하려는 여대생 정지안의 활약이 주된 이야기입니다.

 

킬러 조직과 연관됐던 삼촌과 그가 운영했던 비밀투성이 쇼핑몰의 정체,

그리고 늘 의문이었던 부모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지안은

한편으론 놀랍고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이지만

한편으론 그제야 부모의 죽음 이후 자신을 키운 삼촌의 일거수일투족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삼촌은 안 보이는 곳에서도 늘 자신을 지켰던 수호천사였고,

허허실실 그저 좋아 보이기만 하던 겉모습 역시 자신을 위한 튼튼한 방패였음을 깨닫습니다.

잘 들어, 정지안.”이란 말로 시작하곤 했던 시시콜콜한 잔소리와 가르침들은

지안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철저히 계산된 매뉴얼이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런 삼촌의 죽음이 무자비한 범죄조직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지안은

삼촌에 의해 몸과 마음에 깊게 새겨진 본능을 일깨워 목숨을 건 전쟁에 나섭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속도감, 재미, 반전 등 킬러 액션 스릴러의 미덕을 고루 갖춘 작품입니다.

비록 한국에 어울리는 현실적인 설정은 아니지만

영화로도 보고 싶을 만큼 서사와 비주얼 모두 매력적으로 그려졌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50~100페이지 정도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는 점인데,

캐릭터나 사건 모두 정신없이 빠르게 묘사된 탓에 마치 요약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킬러 액션 스릴러인 방진호의 방의강 시리즈이후

모처럼 짜릿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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