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하면, 이 작품을 읽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건 치기로 가득했던 까마득한 옛날의 일입니다.

그 무렵엔 존 레논 암살범인 채프먼이 이 작품에 탐닉했다는 사실도 몰랐고,

미국 대통령 암살 또는 저격사건에 이 작품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다만,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꼭 읽어야 할 필독서처럼 여겼던 것 같은데,

이런저런 게으름 탓에 한참의 세월이 지나 이른바 꼰대가 돼서야

더는 미룰 수 없는 숙제처럼 책장 속에 파묻혀 있던 호밀밭의 파수꾼을 꺼내 읽게 됐습니다.

 

출판사의 줄거리 소개를 살짝 요약해보면,

사립학교 펜시의 재학생인 16살 홀든 콜필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퇴학을 통보받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낙제였지만, 그 이면엔 소년의 성장기의 혼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홀든은 기성세대의 속물근성과 위선에 염증을 느낍니다.

그런 그에게 사립학교 펜시는 외부의 평가와 달리 치기 어린 동급생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학부모의 지위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하는 견딜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홀든은 퇴학을 통고하는 편지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뉴욕 거리를 헤매기로 마음먹습니다.

 

딱히 기승전결이라고 할 것도 없는 홀든의 며칠간의 방황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16살이지만 이미 술과 담배에 익숙해진 홀든은 방황의 와중에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친구, 선배, 선생 등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물론

클럽에서 만난 천박한 여자들, 다혈질의 택시기사, 폭력적인 포주와 창녀, 겸손한 수녀 등

극과 극의 사람들과 만나거나 충돌하면서 그만큼의 다채로운 감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풀어버릴 데 없는 격정은 그의 몸과 마음 안에서 제멋대로 날뛰었고,

그를 상대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격정이 지닌 위험한 분위기에 이내 뒤로 물러서곤 합니다.

 

다 읽은 후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홀든이 참 많은 것(사람)을 싫어했고 끔찍하게 여겼고 역겨워했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부조리함과 위선자의 거들먹거림을 증오했고 자기혐오 역시 임계점을 들락거립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한겨울 얼어붙은 공원 호수의 오리들의 안위를 궁금해 하고,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옛 연인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 앞에서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동생 피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감추지 않기도 합니다.

그 무엇도 홀든의 삐딱함을 달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장래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

다소 황당하지만 순수한 미래를 꿈꾸는 그의 태도는 딱 16살에 어울리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질풍노도의 상징인 셈입니다.

 

다만,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 이 작품을 만난 저로서는 쉽게 홀든에게 이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나이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일 수도 있고,

홀든의 일상을 나열했을 뿐인 서사 자체에 몰입하기 힘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 너무 기대가 컸던 탓에 아쉬움이나 실망감이 더 컸던 것 같은데,

만일 제가 10~20대에 이 작품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도 궁금하고,

지금의 10~20대가 이 작품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가장 궁금한 건, 왜 현실의 암살범들이나 영미권 스릴러 속 연쇄살인마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에 큰 영향을 받았거나 영감을 얻었을까, 라는 의문인데,

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서라도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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