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고백하면, ‘츠나구는 몇 년 전쯤 읽다가 중도 포기했던 작품입니다.

다시 읽으면서 다섯 편의 수록작 가운데 세 번째 작품까지만 읽고 그만둔 걸 알게 됐는데,

그때 포기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제나 소재에 비해 이야기가 가벼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교훈이나 감동을 목적으로 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읽혔다고 할까요?

그러다가, ‘츠나구를 포기했던 일을 모 카페 댓글에 짧게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데 읽다가 포기하셨다 하시니 살짝 맘이 아픕니다!”라는 답글을 보곤

기회가 닿으면 다시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제가 읽지 않은 두 편의 수록작이 츠나구의 진면목이란 점,

그리고 이야기가 주제나 소재에 비해 가볍다고 예단한 건 실수였다는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

 

츠나구(つなぐ)”

- 사전적 의미는 연결하다’, ‘이어주다라는 뜻의 동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또는 사자(使者). 즉 둘을 만나게 해주는 면담 중개인

 

츠나구의 규칙

- 면담의 기회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단 한 번. 즉 평생 단 한 명밖에 만날 수 없음.

- 의뢰는 산 자만 가능. 죽은 자는 의뢰할 수 없으며 누군가 의뢰해주길 기다려야 함.

- 면담 시간은 하룻밤뿐이며, 죽은 자의 영혼은 그 하룻밤동안 진짜 육체를 갖게 됨.

 

예상과 달리 이 판타지 같은 만남의 중개인10대 고교생 시부야 아유미입니다.

어딘가 아마추어 같은 냄새까지 폴폴 풍기는 탓에

안 그래도 죽은 자를 만나게 해준다는 것 자체를 사기나 속임수로 여긴 사람들은

대부분 중개인인 아유미에게 의혹을 눈길을 보내는데,

실제로 죽은 자들을 만난 후에야 그들의 의혹은 고마움 또는 원망의 감정으로 바뀝니다.

 

제대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살아갈 용기를 줬던 예능 탤런트를 만나려는 회사원,

장남이라는 굴레 때문에 평생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남자가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연,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국 단짝을 죽이고 말았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던 한 여학생의 의뢰,

그리고 갑자기 실종된 후 7년간 무소식이던 연인의 죽음을 확인해야 하는 한 남자의 사연 등

제각기 안타깝거나 애틋한 인연을 만나려는 네 사람의 사연들이 펼쳐집니다.

 

마지막 수록작에서는 살짝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유미에게 츠나구 자리를 물려주려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세미 프리퀄처럼 펼쳐집니다.

또 아유미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의 죽음의 진실이 그려집니다.

특히 할머니와 부모님의 사연은 비극적인 미스터리 코드까지 담고 있어서

이 작품이 단순히 흥미로운 판타지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매력적인 대목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매개하는 역할은 무거운 책임과 공포까지 떠안아야 하는 일입니다.

알고 싶지 않지만 알게 될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자칫 적잖은 후유증과 후회와 자책에 시달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상의 쓴맛이나 신맛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 아유미에게 무척 가혹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는 할머니의 진심 어린 부탁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합니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출간된 게 2010년이니

작가가 욕심이 있었다면 후속작으로 완숙해진 츠나구 아유미의 이야기를 냈을 법도 한데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완숙해진 츠나구 아유미라면 재미있는 판타지 이상의 서사가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츠지무라 미즈키라면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다는 미련이 남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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