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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져서 제목이라면 수만번쯤 들어본 작품이지만,
창피하게도 어떤 장르이며 무슨 이야기를 다루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책장에서 너무 오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들었습니다.
고전이란 이유만으로 호기심, 의무감, 압박감을 느끼는 건 저만의 일은 아닐 텐데
그나마 벽돌 같은 두께도 아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데다 김영하의 번역이란 사실 덕분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증권맨이 되기 위해 미국 동부에 터전을 잡은 닉 캐러웨이의 이웃은 제이 개츠비입니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호화로운 저택에 살며 주말마다 성대한 파티를 여는 엄청난 부자입니다.
어느 날 저택에 초대받은 닉은 개츠비의 첫사랑이 해안 맞은편에 사는 자신의 사촌 데이지이며
지금은 톰 뷰캐넌의 아내가 된 그녀를 개츠비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한편, 남편 톰의 불륜을 알면서도 자신이 누리는 부(富)를 포기할 수 없어 갈등하던 데이지는
닉의 중재로 개츠비와 만나게 된 후로 복잡한 심정에 빠집니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만남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긴장감을 자아내기 시작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끼어들면서 비극적인 파국을 향해 치닫기 시작합니다.
일단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당혹스러웠는데,
하나는 주인공 개츠비를 수식하는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왜 붙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또 하나는 “내가 읽은 건 분명 첫사랑에 얽힌 통속적이고도 비극적인 로맨스인데,
이 유명한 고전을 제대로 읽은 게 맞나?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닌가?”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은 본문 뒤에 붙은 김영하의 해설에서 얻을 수 있었는데,
첫 의문인 ‘위대한’(Great)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직접 읽은 뒤에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스포일러까지는 아니지만) 이 서평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제가 잘못 읽은 건 아니다.”인데,
이 작품이 분명 제가 읽은대로 통속적이고도 비극적인 로맨스인 건 맞지만
동시에 ‘1920년대 미국’이라는 시대적-사회적 의미가 짙게 깔려 있기도 해서
액면대로만 읽고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점을 뒤늦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차 대전과 대공황 사이인 1920년대는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화려한 재즈 시대를 배경 삼아 아메리칸 드림과 물질주의,
계급적 동경과 부에 대한 갈망 등”이 미국을 지배하던 시대입니다.
첫사랑인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富)를 축적한 개츠비와
그와는 반대로 사랑의 기준을 오로지 화려하고 부유한 삶에 맞춰놓은 데이지의 재회는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이러니한 비극을 낳게 된다는 뜻인데,
전통적인 의미의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하층 계급의 유부녀와 불륜에 빠진 데이지의 남편 톰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아이러니함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비극을 자아내서 눈길을 끌기도 합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첫사랑의 신화, 그 찬란한 영광에 인생을 건 남자의 위대한 환상.”은
이 작품을 한 줄로 요약한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한 줄의 요약을 제대로 맛보려면
이 작품을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난해한 고전을 읽은 뒤 그에 대한 해설이나 ‘옮긴이의 말’을 읽다 보면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본 내용을 포장하고 미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의 경우엔 김영하의 해설이 무척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의 해설을 읽은 뒤 다시 한 번 찬찬히 첫 페이지부터 읽어나간다면
행간에 숨어있던 이 작품의 참맛 하나하나까지 알차게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