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드 문 - 달이 숨는 시간,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7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저만의 독서계획 해리 보슈+@ 다시 읽기의 세 번째 “+@”보이드 문입니다.

(“+@”시인’, ‘블러드 워크’, ‘보이드 문’, ‘허수아비입니다.)

보슈 시리즈를 다시 읽는 계획에 정작 보슈가 등장하지 않는 “+@”가 포함된 것은

이 작품들 속 주인공들이 이후 보슈 시리즈에 주요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인데,

보이드 문의 주인공 캐시 블랙은 보슈 시리즈 10편인 시인의 계곡에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다른 작품에도 등장한다고 하는데, 아직 다 못 읽었거나 읽었더라도 기억을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탠드얼론이지만 보슈 시리즈의 외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부제인 달이 숨는 시간은 점성학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달이 어느 별자리에도 속하지 않는 3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데

이 작품에서 그 시간은 불운 또는 불행을 야기하는 불길함의 징조로 설명됩니다.

 

운명 같은 만남을 통해 연인이며 동시에 특수절도 파트너가 된 캐시 블랙과 맥스 프릴링.

보이드 문이 뜬 5년 전 어느 밤,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지막 대형 절도를 계획했던 두 사람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직면한 끝에 맥스는 목숨을 잃고 캐시는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현재 가석방 상태인 캐시는 LA에 살며 어떻게든 평범한 생활을 이어나가려 하지만

운명은 또다시 그녀를 큰돈과 위조여권을 구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붙입니다.

라스베이거스, 그것도 맥스가 죽은 호텔에서 벌여야 하는 큰 건수를 제안 받은 캐시는

우여곡절 끝에 미션에 성공하지만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참극에 휘말리고 맙니다.

몸을 숨긴 캐시를 뒤쫓기 시작한 인물은 라스베이거스의 사이코패스 해결사 잭 카치이며,

그는 가는 곳마다 피비린내 나는 무차별 살상을 벌이며 캐시를 패닉상태에 빠뜨립니다.

 

큰 틀만 보면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함정에 빠진 캐시와 그녀를 쫓는 잭 카치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드라마틱한 설정들이 첨가되면서 속도감과 긴장감 만점의 스릴러가 완성됩니다.

LA를 벗어나기만 해도 다시 교도소로 끌려가야 하는 처지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또다시 큰돈을 위해 범죄를 저질러야만 하는 캐시의 안타까운 사연,

캐시가 훔치려 했던, 시카고 마피아와 마이애미 조직폭력배가 개입된 검은 돈의 비밀,

라스베이거스의 나쁜 기운의 결정체 같은 사이코패스 해결사 잭 카치의 무자비한 살육 등

마지막 페이지까지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끔 만드는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실, 캐시가 큰 위험을 겪어가며 가까스로 검은 돈을 수중에 넣는 1/3지점까지는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한 범죄수법 설명에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고 있어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답지 않게 조금은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이 점 때문에 별 0.5개를 뺐습니다.)

하지만 잭 카치가 등장하고 살벌한 추격전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롤러코스터가 시작되는데,

그 속도와 낙차는 어지간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능가할 정도의 짜릿함을 자랑합니다.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은 게 이해 안 될 정도로 비주얼도 뛰어나고

팔색조 같은 주인공 캐시 블랙 역시 할리우드 여배우라면 탐낼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동양철학과 점성학의 산물인 보이드 문이란 제목은 영미권 스릴러와는 안 어울려 보이지만

달이 숨은 그 시간 동안 발산된 불길한 운명에 지배당한 듯한 캐시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면

그 어느 제목보다도 이 작품의 서사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불꽃 튀는 운명처럼 만났지만 최악의 타이밍에 캐시의 곁을 떠나버린 맥스의 일도,

고생 끝에 손에 넣은 큰돈이 오히려 재앙을 초래하게 됐다는 점도,

또 자신을 뒤쫓는 잭 카치가 실은 오래전부터 악연 중의 악연으로 엮인 사이코패스란 점도

캐시에겐 달이 숨은 시간이 아니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잔혹한 현실이 빚어낸 처연함과 애틋함으로 가득 찬 해리 보슈 시리즈와는 달리

어딘가 운명론적인 비극의 냄새가 진동하는 특별한 정서가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캐시 블랙은 해리 보슈 시리즈’ 10편인 시인의 계곡에 다시 등장합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은 탓에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그것도 해리 보슈 시리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조만간 다시 읽게 될 시인의 계곡은 캐시 블랙 때문에라도 더욱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불운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그 불운을 자신의 힘으로 산산조각 낸 캐시 블랙의 이야기는

빠르고 팽팽한 액션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쾌감 이상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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