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본문 마지막 줄을 읽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평을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 쓴다면 뭘 써야 되나?”

그런데, 말미에 실린 역자후기를 보곤 다소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역자 역시 후기를 쓰기가 몹시 껄끄럽네요. (처음엔 편집부의 후기 요청을 거절했는데)

정말이지 이 후기가 책에 안 실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999리입니다. .”라며,

진심으로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괴담 중 하나인 요쓰야 괴담을 재해석해서 새롭게 그려냈으며

교고쿠 나쓰히코가 그리는 기괴한 사랑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은

전직 무사 이에몬과 무가의 딸 이와 사이의 기괴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건 맞지만,

번갈아 한 챕터씩 이끄는 조연들의 역할과 그들만의 스토리도 주인공 못잖게 비중이 커서

굳이 정리하면 에도 시대 한 마을에서 벌어진 광기의 향연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가문의 몰락 이후 목수가 된 전직 무사 이에몬은 웃음 따윈 모르는 무뚝뚝한 인물입니다.

그런 이에몬이 중매를 통해 하급무가의 딸 이와의 남편이 됩니다.

거침없는 돌직구 스타일의 이와는 한때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며 혼담을 독차지했지만

뒤늦게 걸린 포창(천연두) 때문에 몸과 얼굴이 모조리 망가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이와의 대쪽 같은 성격은 전혀 변함이 없었는데,

그런 탓에 자신의 의지보다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이뤄진 이에몬과의 결혼생활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 좌충우돌, 끝없는 싸움과 시비의 연속으로 점철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당대 최악의 소시오패스인 이토 기헤이가 끼어들면서

두 사람의 악연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동시에 끔찍한 죽음들을 야기하기에 이릅니다.

 

꽤 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기구한 사연들을 풀어내다가 대부분 그 사연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실은 그 모든 사연들과 죽음은 같은 뿌리에서 기인한 것들입니다.

아직 이와가 남자들의 관심과 혼담을 독차지하던 시절,

상급관리인 소시오패스 이토 기헤이가 이와를 욕심냈지만 거절당한 바 있습니다.

이후 이토는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지역민들을 향해 참혹한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와가 이에몬과 결혼하자 이토는 두 사람의 파멸까지 획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이토의 만행으로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자들의 복수극까지 개입되면서

이야기는 기괴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피로 얼룩진 괴담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최애 시리즈 중 하나인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 월드 2과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고,

이야기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보니 초반부터 흥미롭게 읽힌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고쿠 나쓰히코 특유의 의도된 모호함이 계속 발목을 잡았는데,

가장 두드러진 건 완결되지 않은, 그래서 독자 스스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문장들이고,

또 하나는 좀더 세세히 그려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에몬과 이와의 사랑입니다.

 

교고쿠 나쓰히코를 두세 편밖에 읽지 않았으니 그의 특유함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생략과 축약이 과도한 나머지 통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문장들이 너무 많은 건 사실입니다.

, 이에몬과 이와의 사랑 역시 ?’라는 의문을 자주 자아낼 만큼 모호하고 난해했는데,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이에몬은 왜 저럴까?”, “이와는 왜 저럴까?” 등에 대해

교고쿠 나쓰히코는 대체로 불친절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의 독해력이나 이해력이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애잔하면서도 불멸의 향기를 지닌 듯한 두 사람의 엔딩이 쉽게 납득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이해가 쉽고 선명하게 그려진 인물은 소시오패스 이토 기헤이였는데,

이 작품의 모든 불길한 기운과 참혹한 비극이 그에게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술도, 돈도, 권력도, 여자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가 희열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은 타인의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만끽할 때뿐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아이를 잃은 상중(喪中)의 여인을 겁탈하며 만족을 느끼는 정도이니,

소시오패스 중에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이에몬과 이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풀어낸 반면,

확실한 악행의 주인공 이토 기헤이는 오히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캐릭터였습니다.

 

주위에서 이 작품을 교고쿠 나쓰히코의 최고작이라고 평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다른 건 논외로 하더라도 이에몬과 이와가 조금만 더 이해하기 쉽게 그려졌더라면

저 역시 분명 그런 평가를 내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설정과 서사를 지닌 작품이란 뜻인데,

제게는 동시에 그만큼 아쉬움이 깊게 남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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