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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 김희재 장편소설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0년 2월
평점 :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에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과 설정들이 꽤 많이 공개돼있는데,
살짝 의아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 그 범위 안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 윤색작가 서원의 삶은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습니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연인이던 건축디자이너 승우는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제야 뱃속에 자신과 승우의 2세가 자리 잡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정진의 도움으로 큰 위기를 넘긴 서원은
그의 진심어린 구애에도 승우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번번이 거절했지만,
정진의 집이 오래 전 승우가 자신을 위해 설계했던 바로 그 집임을 알게 되곤
오로지 승우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정진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완벽한 IOT(사물인터넷)가 구현된 정진의 집은 겉으로는 이상적인 집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현재 그 집 2층에는 서원과 정진 외에 또 한 사람의 남자가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서원이 정진 몰래 끌어들인 옛 연인 승우입니다.
영화감독 김성호의 ‘추천의 말’을 좀 축약 편집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착에 관한 심오한 심리소설, 남녀 성인의 설레는 에로틱 소설,
그런데 거기에 SF에 나올 법한 판타지와 결합된 공포소설이나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하우스’는 이러한 복합장르 소설로서는 독보적인 존재일 것이다.”
요약한 줄거리만 보면 집착, 심리, 에로틱까지는 누구나 쉽게 예상이 가지만
SF, 판타지, 공포 같은 코드가 어떻게 결합됐다는 건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대목까지 서평에서 소개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스티븐 킹의 중단편의 향기가 물씬 배어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외딴 언덕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외경에 완벽한 IOT가 구현된 꿈에 그린 집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집을 감도는 분위기는 무척 불편하거나 음울하거나 서늘하기까지 합니다.
사라진 연인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그의 아기를 임신한 채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한 서원과
도무지 정을 줄 수 없는 아기는 물론 늘 예민한 서원 때문에 마음이 아픈 정진의 관계는
완벽한 외경과 인테리어, IOT의 편안함과는 달리 집 전체에 싸한 분위기만 맴돌게 만듭니다.
하지만 집의 분위기는 정진이 출근함과 동시에 180도 바뀝니다.
아기를 안은 승우가 2층에서 내려오면 서원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갓 연애를 시작한 뜨거운 열정에 휩싸인 모습이랄까요?
그렇지만 위태위태한 세 사람의 동거는 예정된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영미권 심리스릴러가 생각나는 독자들이 많을 텐데,
저 역시 그런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작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기막힌 후반부를 내놓습니다.
물론 이 대목에 대해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꽤 갈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낯설 수도, 억지 같아 보일 수도, 또, 앞서 읽은 이야기가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반면
영화감독 김성호의 ‘추천의 말’대로 복합장르의 신선함에 매력을 느낄 수도,
스티븐 킹의 공포물이 전해주는 막판의 짜릿함 때문에 환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작인 ‘소실점’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덕분에 김희재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 기대됐고,
역시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점을 작품 곳곳에서 여러 번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에 대한 호감을 상기시키며 ‘호평’을 써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호불호의 경계선에서 어느 쪽도 택하기 어렵게 만든 클라이맥스와 엔딩 때문에
고민 끝에 꽤 야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별 3.5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김희재의 신작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고 주목할 것은 분명합니다.
이 작품으로 김희재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소실점’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