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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술래잡기 ㅣ 스토리콜렉터 1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생명의 전화’ 상담원 누마타 야에는 어느 날 중년남자 다몬 에이스케의 전화를 받는다.
자살을 앞두고 지난 며칠간 어릴 적 친구들과 통화를 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야에는
관계기관에 연락하여 그를 구하려 하지만 절벽에서 투신한 흔적만 남긴 채 그는 종적을 감춘다.
한편, 다몬이 통화했다는 어릴 적 친구 중 한 명인 호러 미스터리 작가 하야미 고이치는
옛 친구의 기묘한 증발에 의문을 느끼고 독자적으로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몬의 실종 이후 연이어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이 자신과 친구들의 30년 전 봉인된 기억과 연관 있음을 깨달은 하야미 고이치는
불길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유년기를 보낸 마다테 市의 다루마 신사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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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작품마다 편차는 있지만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은 늘 즐겨 찾는 애독서 중 하나입니다.
특히 ‘도조 겐야 시리즈’나 ‘작가 시리즈’처럼 호러와 미스터리가 잘 결합된 작품들은
적절한 수준의 공포심과 짜릿한 반전을 맛볼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곱 명의 술래잡기’ 역시 그런 매력이 잘 배어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호러와 미스터리가 ‘3 대 7’ 정도로 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똑같은 놀이인 ‘다레마가 죽였다’가 등장합니다.
하야미 고이치와 그의 친구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던 30년 전 하나 같이 아웃사이더들이었고,
그들은 다른 아이들이나 마을사람들은 찾아오지 않는 표주박산에 자리 한 낡은 신사 마당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즐겁게 이 놀이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 모두의 기억을 휘발시키고 봉인할 만큼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고,
하야미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그날 자신들이 목격한 일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살을 예고한 다몬 에이스케가 바로 그 신사 마당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어 벌어진 유년기 친구들의 참혹한 죽음마다 어린 시절 술래가 외쳤던
“다레마가 죽였다”라는 메시지가 개입된 걸 알게 된 하야미는
어떻게든 봉인된 기억을 해제해보려 하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30년 만에 문제의 그 장소를 찾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런 설정만 보면 호러 성향이 굉장히 강한 작품일 것 같은데,
진실 찾기에 나선 주인공 하야미 고이치가 호러 미스터리 작가로 설정된데다
어딘가 불길해 보이는 표주박 모양의 산(미쓰다 신조가 즐겨 설정하는 공간이죠)과
그보다 더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폐허 같은 신사가 주 무대이다 보니
역시 이번에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호러 서사’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실체가 있는 살인사건’이 분명해 보이기에
과연 물과 기름 같은 호러와 미스터리가 어떤 식으로 결합될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100여 페이지를 남겨놓고 벌어지는 하야미의 추리의 향연과 반전은
호러와 미스터리는 물론 치유될 수 없는 오랜 상처가 낳은 비극의 서사까지 담아냅니다.
미스터리는 예상 밖의 범인을 지목하면서 깔끔하고 선명한 엔딩을 장식하지만,
미쓰다 신조는 진실의 일부만큼은 설명 불가능한 호러의 영역에 남겨놓기도 합니다.
독자에 따라 “그게 말이 돼?”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점이 미쓰다 신조 표 호러 미스터리의 매력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덧붙여, 우연과 운명이 조화를 부린 끝에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모호하고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엔딩이 기다립니다.
하야미 고이치의 추리와 수사는 미쓰다 신조의 대표 주인공 도조 겐야와 많이 닮았습니다.
홀로 사방팔방을 돌아다니고 들쑤시며 천천히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도 그렇고,
갖가지 추리를 늘어놓으며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다가 막판에 ‘정답’을 내놓은 방식도 그런데,
실제로 본문 속에서 하야미는 자신이 도조 겐야를 좋아해서 따라하는 것이라고 진술합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니 한국에 오랫동안 소개되지 않고 있는 ‘도조 겐야 시리즈’가 생각났는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이후 7년 동안 무소식이라 이젠 기대를 접을 때가 된 것도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소식에 대한 헛된 희망을 아주 내버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