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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웃는 숙녀 ㅣ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7월
평점 :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연이어 읽다보면 살짝 지치거나 피로도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나카야마 시치리가 딱 그런 경우였고, 그래서 얼마 전, 한 1년은 쉬자는 마음까지 먹었습니다.
그 결심을 너무 쉽게 무너뜨린 게 이 작품의 전작인 ‘비웃는 숙녀’였고,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머지 후속작인 이 작품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집어 들게 됐습니다.
자신의 손은 조금도 더럽히지 않은 채 상대를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절망에 빠뜨리거나
또는 누군가를 살해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 만드는 희대의 악녀 가오루 미치루.
그녀의 목적은 돈도 아니고 쾌락도 아닙니다.
그냥 툭 하고 머릿속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그 순간 상대를 으스러뜨리겠다는 욕망이 불붙고
누구도 생각해내기 어려운 정교하고 확실한 계획을 세운 뒤 그대로 실천할 뿐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평생 모으기도 어려운 돈을 손쉽게 손에 넣지만
딱히 그 돈으로 화려한 삶을 영위하거나 사치스럽게 자신을 가꾸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물욕이나 쾌락과는 거리가 먼 특이한 소시오패스라고 할까요?
전작 ‘비웃는 숙녀’가 각기 다른 인물들을 상대로 한 가모우 미치루의 ‘폭주 악녀극’이었다면,
‘다시 비웃는 숙녀’는 마지막 사냥감을 처치하기 위한 사전 작업들,
즉 사냥감의 주변부터 차례차례 제거해가는 연작 스타일의 단편들로 구성돼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냥감의 사지 또는 수족을 제거함으로써 극단적인 압박감을 주는 셈인데,
이것만 보면 이번에는 가모우 미치루가 확실한 목표와 동기가 있는 ‘심판자’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스스로 밝히는 이 ‘거사’의 계기는 원래 그녀답게 무척이나 쿨하고 건조할 뿐입니다.
만일 이 세상의 소시오패스가 가모우 미치루처럼 활동한다면
그건 정말 끔찍한 악몽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나카야마 시치리의 매력인 끝내주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마지막 반전은 쉽게 눈치 챌 수 있는데,
분명히 알고 읽는데도 그 서늘함과 짜릿함은 조금도 밋밋해지지 않았습니다.
(‘비웃는 숙녀’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다 읽은 뒤 스스로에게 들었던 의문은
“과연 가모우 미치루는 악녀인가?”라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조종하고 절망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악녀 같아 보이지만
읽는 내내 한 번도 그녀를 악녀라고 여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악녀인 듯, 악녀 아닌 악녀 같은 그녀”라는 ‘옮긴이의 말’의 부제는
저의 의문을 그대로 풀어 써놓은 듯 해서 눈에 쏙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전작인 ‘비웃는 숙녀’를 워낙 재미있게 읽은 탓에 살짝 신선함이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별 0.5개를 빼긴 했지만 팽팽한 긴장감과 오락성은 여전한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전작인 ‘비웃는 숙녀’ 말미의 ‘옮긴이의 말’에서 이 작품과 함께 출간이 예고됐던 작품은
가모우 미치루가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한 인물과 2인조로 활약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 설정만으로도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인데
과연 어떤 인물과 ‘듀엣’이 될지, 그들의 목표물은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