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스틸
린지 페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출판사 홍보카피였습니다.

 

“‘제인 에어를 매혹적으로 변주한 로맨틱 서스펜스!”

순종과 헌신을 강요하는 빅토리아 시대, 매혹적인 여성 연쇄살인범이 나타났다!”

 

두 번째 카피는 더없이 저의 호기심을 이끈 반면, 첫 번째 카피는 꽤나 주저하게 만들었는데,

살짝 삐딱한데다 애매모호하고 불친절한 영국 고전문학의 냄새가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제목만 숱하게 들어봤을 뿐 읽은 적 없는) ‘제인 에어에 대한 오마주라는 점도 불길(?)했는데

그래선지 딱 100p까지만 읽고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접자는 생각으로 첫 장을 펼쳤습니다.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1837년부터 대략 15년 정도의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9살에 자신이 살던 저택에서 첫 살인을 시작한 이래 기숙학교를 거쳐 런던으로 도망친 뒤

쓰레기만도 못한 자들을 (고의적 또는 우발적으로) 살해하며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제인은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어릴 적 자신이 살았던 저택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실 제인은 오랫동안 (어머니의 유품을 통해) 그 저택의 상속자가 자신이라고 믿어왔던 탓에

느닷없이 나타난 저택의 새 주인에 대해 증오심과 살의마저 지니게 됐고,

저택 되찾기라는 목적을 갖고 신분을 위조하여 가정교사로 들어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택의 새 주인 찰스 손필드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초반에는 저택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제인의 밑바닥 삶이 그려지고,

이후로는 저택에 들어온 제인이 찰스 손필드 때문에 휘말리게 되는 미스터리가 전개됩니다.

자신이 물려받을 저택인데도 별채로 내몰린 채 숙모와 사촌의 눈치를 봐야했던 유년기,

반강제로 들어간 기숙학교에서 터무니없는 횡포와 억압을 겪어야 했던 청소년기,

그리고 런던의 뒷골목에서 살아남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야만 했던 20대 초반 등

제인의 성장과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입니다.

이 기간 중에 (홍보카피대로) 제인이 여러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도 맞고

자신의 살인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소시오패스적 기질을 보여준 것도 맞지만,

사실 제인은 일반적인 흉악한 연쇄살인범과는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자 잭 더 리퍼를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몸통은 제인과 저택의 주인 찰스 사이의 아슬아슬한 로맨스와 함께

과거 전쟁 상황 하의 인도에 머물던 찰스의 과거사와 그 속에 도사린 미스터리입니다.

당연히 미스터리의 해결사로 제인이 활약을 하게 되는데,

목숨을 건 위기와 사랑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애절한 갈등 등 숱한 고비를 넘긴 끝에

제인과 찰스는 그들만의 특별하고 애틋한 엔딩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 고전문학의 냄새가 진하게 밴 570여 페이지라는 분량에서 알 수 있듯이

린지 페이의 문장은 (위에서 정리한 줄거리처럼) 단순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살짝 삐딱한데다 애매모호하고 불친절한 느낌이 무척 강했는데,

제인의 성장기를 그린 대목까지는 이런 느낌이 그리 거북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제인이 저택에 들어가고 미스터리 서사가 시작된 뒤로는 좀 힘든 책읽기가 된 게 사실입니다.

특히 미스터리의 발단인 인도에서 찰스가 겪은 사건들은 복잡하고 모호하게 설명되는데다

누가 악당이고 누가 아군이고 누가 비밀을 가진 자인지조차 확실히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다소 반골적이고 불친절한 영국식 장르물에 덜 우호적인 독자라면 추천하기 어렵겠지만,

반대로, 그 맛에 익숙하거나 관심 있는 독자라면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린지 페이의 작품 중 뉴욕경찰국 출범 전후를 그린 고담의 신에 관심이 가긴 하지만,

일단 초반부만이라도 맛보기를 한 뒤 제 취향에 맞는 작품인지 판단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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