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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유물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7 ㅣ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7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보스턴경찰서 강력반 형사 제인 리졸리와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콤비의 일곱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메피스토 클럽’에서 기존 시리즈들과는 확연히 결이 다른 소재,
즉, ‘악마주의 혹은 사탄’을 앞세워 독자를 놀라게 만들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고고학’과 ‘미라’라는, 스릴러치곤 다소 특이한 소재로 돌아왔습니다.
오래된 박물관에서 2천년 전 미라 형태로 꾸며진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고,
뒤 이어 희생자를 남미 원시부족의 전통에 따라 가공한(?) ‘말린 얼굴 가죽’까지 발견됩니다.
또, 살해된 뒤 특수한 환경의 토탄습지에 잠긴 채 가죽만 남은 시신까지 드러나자
리졸리와 아일스는 범인이 고고학과 연관된 인물이라 추정합니다.
이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박물관 직원 조세핀이 뭔가를 감추는 것 같은 와중에
오래 전 이집트와 북미에서 활동한 유물 탐사단에 진실을 향한 열쇠가 있는 것으로 보이자
리졸리는 미미한 단서밖에 남아있지 않은 과거 속 인물들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내장을 빼고 소금을 뿌렸다가 헝겊에 쌀까?
목을 베고 두개골에서 얼굴과 두피를 벗겨내 인형처럼 작은 머리를 만들까?
습지의 검은 물에 담가 가죽 같은 얼굴에 죽음의 고통이 영원히 기록되도록 만들까? (p312)
희생자를 갈가리 토막내거나 날카로운 흉기로 훼손하는 범인도 끔찍하지만
이처럼 ‘보존’과 ‘소유’의 욕망이 강한 범인은 처음 접한 것 같습니다.
희생자를 토막내고 훼손하여 간직하는 소시오패스는 가끔 본 적 있어도
마치 영혼 자체를 가둬놓으려는 듯한 기괴한 행각은 전대미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희생자들이 고대의 풍습에 따른 미라 또는 유물 형태로 발견되고,
사건의 진실은 짧게는 10여년 전, 길게는 20년도 넘는 과거 속에 있다 보니
여느 때보다 리졸리와 아일스의 행보는 느리고 답답하게 보입니다.
리졸리가 찾아간 인물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겨우 몇몇 단서를 손에 넣더라도 사건의 중심에 있는 조세핀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부검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시신들이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일스의 역할과 비중은 전작들에 비해 왜소한 편이고,
FBI가 끼어들 틈도 없으니 리졸리의 남편 게이브리얼 역시 단역처럼만 등장할 뿐입니다.
그보다는 오랜 과거 속 비밀을 꽁꽁 싸매고 있는 조세핀이 세컨드 주인공처럼 보이는데,
중반 이후 그녀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사실, 사건은 전대미문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다 읽고 복기해보면 큰 틀은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고 심플하게 보입니다.
물론 연쇄살인범들의 캐릭터나 범행수법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조금도 밀리지 않지만,
범행 목적이라든가 궁극의 목표물을 향한 범인의 ‘전략’은 다소 싱겁게 그려졌습니다.
작가도 이런 부분을 고려한 탓인지 전에 없이 막판 반전에 애를 쓴 느낌이었는데,
끝났다 싶으면 뒤집어지곤 하는 수차례의 반전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이 시리즈를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으로는
초기 ‘의사 3부작’ 이후 점차 하향세를 그렸다는 인상이 남아있었는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오류라는 게 시리즈 첫 편부터 다시 읽어온 지금까지의 판단입니다.
초기 ‘의사 3부작’만큼은 아니더라도 리졸리와 아일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악마주의나 고고학까지 소재를 넓힌 작가의 스펙트럼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다음에 읽을 ‘아이스콜드’를 끝으로 한국에선 이 시리즈가 더는 출판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팬 입장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