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꽤 오랫동안 책장 안에 갇혀있던 벽장 속의 치요를 드디어 꺼내 읽었습니다.

오기와라 히로시라는 작가 이름이 낯선 듯 하면서도 왠지 익숙해 보인다 했는데,

소장 목록을 뒤져 보니 이 작품 말고도 콜드게임소문이 제 책장에 꽂혀있더군요.

뒤집어쓴 먼지도 억울한 텐데 책 주인이란 사람이 이 모양이니 정말 화가 났을 것 같네요.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이 작품은 섬뜩하면서도 애잔하고, 우습지만 슬픈 이야기.”입니다.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나름 적확한 한 줄 정리로 보입니다.

귀엽지만 참혹한 사연을 가진 14살 소녀 유령,

천진난만한 동화처럼 보이지만 호러보다 무섭고 너무나도 슬프고 끔찍한 참상이 깃든 단편,

내연녀의 사체를 토막 내려다 예기치 못한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에 처한 남자,

서로를 죽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부부의 긴장감 넘치는 저녁식사 자리,

치매에 걸려 꼼짝도 못하는 시아버지를 잔인하게 학대하던 며느리의 최후,

15년 전 실종된 여동생의 영혼이 보낸 신호 덕분에 여동생의 진실을 알게 되는 언니 등

섬뜩한 호러, 웃지 못 할 블랙코미디, 애잔한 판타지가 골고루 뒤섞인 작품집입니다.

 

인간의 악의를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살인레시피’, ‘냉혹한 간병인’)도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유령 이야기(‘벽장 속의 치요’, ‘Call’, ‘신이치의 자전거’),

호러가 아닌데 호러처럼 읽히면서도 끝내 가슴이 애잔해지는 이야기(‘어머니의 러시아수프’),

다분히 연극적인 블랙코미디(‘예기치 못한 방문자’)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섞여 있어서

딱히 어떤 하나의 경향을 지닌 작품집이라고 정의할 순 없지만

동시에 여러 맛을 즐길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매력이 가득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오기와라 히로시라는 작가가 어떤 성향, 어떤 매력이 있는 작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다양한 장르가 혼재된 이 단편집 덕분에 꽤 관심을 갖게 된 게 사실입니다.

일단 책장 속에 갇힌 그의 작품부터 먼저 구제해준 뒤 조금씩 더 관심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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