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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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품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해 유명세를 얻은 추리작가 오마타 우시오는

한 여성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만 그녀는 목이 베이고도 멀쩡한 모습으로 사라진다.

9년 후, 우시오는 복면 작가로 알려진 유명 추리작가로부터 초대장을 받는다.

외딴섬에 우뚝 솟은 복면 작가의 저택 천성관을 찾은 추리작가는 우시오까지 모두 다섯 명.

하지만 그들을 초대한 작가는 보이지 않고 기분 나쁜 진흙 인형 다섯 개만 식탁에 놓여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명의 추리작가들은 서로의 공통점을 깨닫는다.

그들 모두 9년 전에 죽은 한 여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모두 사망한 뒤에야 외딴섬을 충격에 빠뜨리는 진정한 사건이 시작된다.

 

● ● ●

 

이것이 일본을 휩쓴 특수설정 미스터리다!”라는 출판사의 홍보카피대로

이 작품엔 정말 특수한 설정이 포함돼있습니다.

당연히 스포일러이니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오마주가 분명해 보이는 제목만 보고

나쓰키 시즈코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처럼 순수한 오마주라고 생각한 독자라면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에 꽤나 놀라고 충격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출판사가 공개한 대목까지만 소개하면) ‘특수설정의 관전 포인트는

외딴섬에 초대된 5명의 추리작가가 모두 죽은 후에야 진짜 사건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역설적인 제목이 붙은 점이 눈길을 끄는데

모두 죽은 뒤에 사건이 시작된다면서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기막힌 아이러니는

분명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끄는 설정임은 분명합니다.

 

이런 특수설정외에도 여기저기서 작가의 도발적인 성향이 엿보이는데,

때론 기발함을 넘어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엽기적인 설정과 묘사를 태연히 구사하는 대목에선

작가의 뇌 구조가 궁금해질 뿐이었습니다.

제목마저 그로테스크한 그의 데뷔작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의 클론을 양성한 후 도축해서 먹는 미래 세계를 다룬 걸 보면

아야츠지 유키토가 더없이 변태적인 퍼즐이라 평한 것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오마주를 기대했던 독자 입장에서

그 이상의 아쉬움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누가 범인이고 트릭의 실체는 무엇이며 범인의 목적은 무엇인가?”가 큰 관심을 끌었지만

막판에 밝혀진 진실의 대부분은 다소 공감하기도 어렵고 수긍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으며,

꽤 긴 분량을 통해 설명된 트릭의 실체 역시 억지스럽게 끼워 맞춘 듯 인상이 강했습니다.

나름 작가가 열과 성을 다해 정교한 설계를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선 결과를 위해 과정을 꾸민 것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파격적인 특수설정자체는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었지만

기대에 부응 못한 마지막 마무리가 못내 아쉬움으로 남은 게 사실입니다.

 

또 한 명의 ‘4차원 미스터리 작가를 알게 된 건 반가운 일이고,

특히 그의 기상천외한 데뷔작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는데,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를 머잖아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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