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 마리 유키코 (김은모 옮김, 작가정신)

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연이어 마리 유키코의 작품을 읽어선 안 된다.”

“더는 마리 유키코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

‘여자 친구’, ‘골든 애플’, ‘갱년기 소녀’,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등

앞서 마리 유키코의 작품들을 읽고 쓴 서평에는 매번 비슷한 다짐들이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신간 소식이 들리자 언제나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중독증이 도지기 시작했고,

결국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이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명쾌한 엔딩도 없고, 충격적이지만 깔끔한 미스터리 해결과도 거리가 먼 그녀의 작품은

소위 다크 미스터리 또는 불쾌한 기분이 남는 미스터리를 뜻하는 ‘이야미스’로 불리는데,

이 찜찜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여운이 내뿜는 묘한 흡인력은 좀처럼 거부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작품집에는 제목 그대로 이사와 관련된 여섯 개의 ‘이야미스 단편’이 수록돼있습니다.

새 집을 알아보기 위해 발품을 팔던 여자가 끔찍한 악몽들과 연달아 마주치고,

이사를 하루 앞둔 여자는 버리기도 간직하기도 애매한 수납장 물건들 때문에 패닉에 빠집니다.

어딘가 수상쩍은 이삿짐센터 사무실의 책상에선 예상치 못한 기괴한 물건이 튀어나오고,

사무실 자리 배치를 바꾸는 과정에서 짐을 잃어버린 여직원의 하루는 악몽 그 자체입니다.

집 또는 자리를 바꾸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괴담들이 총출동한 셈인데,

그동안 읽은 마리 유키코의 작품들 가운데에는 비교적 ‘얌전한’ 편에 속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역시 마리 유키코!”라고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었는데,

“집안의 문을 여는 것조차 무서워질지도 모른다.”는 띠지의 카피가 생생히 다가왔던

첫 수록작 ‘문’과 두 번째 수록작 ‘수납장’이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문’은 짧은 단편영화로 만들면 오싹한 느낌이 배가될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평하자면 여섯 수록작 중 각각 두 작품씩 평점 A, B, C를 주고 싶은데,

독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해도 거의 비슷한 평점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마리 유키코의 제대로 된 ‘이야미스’를 기대한 독자에겐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끝없는 장마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날려버릴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올 여름엔 국내 출간된 마리 유키코의 작품 중 유일하게 안 읽은 ‘고충증’을 꼭 읽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가을이나 겨울쯤으로 다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소프트한 ‘이야미스’라도 마리 유키코의 작품을 연이어 읽는 건 무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