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야마시로 아사코라는 필명으로 출간된 작품까지 치면 다섯 편의 오츠이치의 작품을 읽었는데,

두 단편이 수록된 이 작품집은 그가 17세에 쓴 데뷔작이 실려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표제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이 그것인데,

다 읽은 뒤에 다른 독자의 서평을 찾아보다가 딱 제 느낌을 대변한 한 줄을 발견했습니다.

 

열일곱이라는 나이에 이런 작품을 썼다니, 라는 생각보다

열일곱이기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 아닌 물만두 님의 서평 속 한 줄인데, 굳이 따지자면 에둘러 칭찬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실제로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어른이라 불리는 연배의 작가라면 떠올리기 쉽지 않은,

그 또래의 상상력만이 자아낼 수 있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는 치정에 얽힌 살인,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엽기적인 시체 유기,

그리고 끔찍한 연쇄 납치살인사건과 함께 희대의 소시오패스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건 이 무시무시한 설정 속 주인공들이 9, 11살 소년소녀라는 점,

, “그해 여름, 나는 죽어버렸다. 나의 사체는 어디 있을까?”라는 홍보 카피대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1인칭 화자가 살해된 소녀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목에 나의 사체라는 명백히 모순된 문구가 들어간 것입니다.)

더구나 오츠이치가 구사한 단어와 문장들은 초등학생인 등장인물들에게 어울리는

순진무구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라 오히려 더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독자는 살해된 뒤에도 모든 상황을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보는 소녀의 1인칭 화법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이 소녀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이란 헛된 희망을 갖게 됩니다.

동시에 살해된 소녀의 시신을 유기하려는 소시오패스의 대담하고도 위험한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읽는 내내 내가 지금 누구를 응원해야 되는 거야?”라며 난감해지고 마는데,

뒤통수를 세게 치는 마지막 장의 반전에 이르러서는

‘17살 작가 오츠이치의 기막힌 상상력과 기이한 정신세계에 다시 한 번 반하게 됩니다.

 

두 번째 수록작인 유코는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호러판타지인데,

솔직히 다 읽고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몰라서 무척 난감한 작품이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니 뭐라고 서평 쓰기도 곤란해서 다른 독자의 서평을 참고해보려고 합니다.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오츠이치는 데뷔작부터 딱 그다운 매력을 발산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작품에 따라 살짝 만족도의 편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GOTH’, ‘ZOO’, ‘엠브리오 기담은 이런 ‘17세 오츠이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명품들입니다.

(최근 출간된 일곱 번째 방은 신작이 아니라 ‘ZOO’의 개정판입니다.)

아직 못 읽은 그의 미스터리와 호러 작품이 여섯 편 정도 남았는데,

한 번에 읽기보다는 두고두고 특별한 간식처럼 음미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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