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3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3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보스턴경찰서 강력반 제인 리졸리와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가 이끄는

리졸리&아일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앞선 두 작품 외과의사견습의사가 상하권처럼 연결된 이야기 속에서

메스와 칼로 희생자를 난도질하는 희대의 소시오패스를 다뤘다면

파견의사는 제목에 의사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전혀 다른 사건,

즉 보다 현실적인 소재와 평범한(?) 캐릭터의 범인을 앞세운 작품입니다.

 

리졸리는 낡고 쇠락한 수녀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을 맡습니다.

또 같은 강력반 소속의 크로와 슬리퍼는 손목과 발목이 잘리고 얼굴가죽이 사라진 채

폐쇄된 음식점 화장실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여인의 죽음을 조사합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두 사건은 중반부를 넘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는데,

이 과정에서 두 번째 주인공인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마우라 아일스는 시리즈 첫 편인 외과의사에는 아예 등장도 하지 않았고,

두 번째 작품인 견습의사에서도 중요한 조연 정도로만 데뷔한 게 사실입니다.

번역자의 추정에 따르면 이 시리즈는 애초 외과의사한 편으로 끝날 뻔했다가

(기대 이상의 성과 덕분인지) 예상치 못하게 시리즈로 확장됐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두 번째 작품인 견습의사에서는 중요 인물들이 대거 물갈이됐습니다.

그중 한 명이 법의관 아일스이고, 또 한 명은 FBI요원 게이브리얼 딘입니다.

강철 갑옷을 두른 듯한 여전사 리졸리와 갈등 끝에 멜로 라인을 타게 된 딘과 달리

아일스는 견습의사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했는데,

그 때문인지 작가는 파견의사에서는 아일스를 거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수녀원 살인사건 피해자의 부검 도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아일스는

미궁에 빠졌던 리졸리의 수사가 한걸음 나아가게끔 큰 도움을 줬고,

신원미상의 여인의 손목과 발목과 얼굴가죽이 사라진 이유도 파악하는 활약을 펼칩니다.

무엇보다 두 사건의 접점은 물론 이 끔찍한 사건들의 배후까지 추정하는 공을 세우는데,

그로 인해 아일스느 평생 겪어보지 못한 위기일발의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탐문이나 현장 증거보다는 죽은 자의 몸에 남은 단서가 더 중요한 사건들로 설정된 탓에

형사인 리졸리보다 법의관인 아일스가 활약할 여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일스의 진실 찾기 과정이 억지스러운 영웅 만들기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법의관만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명확히 보여준 매력적인 설정이었는데,

앞으로 아일스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무척 기대감을 갖게 만든 대목이기도 합니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에 이르자 작가가 두 주인공의 사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나 봅니다.

전작에서 FBI요원 딘과 잠시 뜨거운 관계까지 이르렀던 리졸리는

자신의 격한 감정은 물론 딘 때문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습니다.

아일스 역시 이혼 후 3년 만에 재회한 전 남편 빅터로 인해 꽤 큰 심리적 동요를 겪는데

이성적으로는 여전히 서로 맞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자꾸만 빅터에게 끌리자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자신을 비난하고 질책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다혈질 폭주 스타일 형사 리졸리도,

죽은 자들의 여왕이라 불리며 얼음장 같은 냉철함을 견지해온 법의관 아일스도

이번 작품에서는 때론 연약한, 때론 열정적인 사람의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는 셈인데

그런 대목들의 분량이 적잖아서 살짝 느슨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몇 군데 오타와 함께 별 0.5개를 빼게 만든 원인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시리즈를 감안하면

주인공들의 캐릭터 구축을 위한 이 정도 바닥공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의사 3부작을 통해 강렬한 데뷔전과 함께 주변인물과의 관계까지 정립한 두 주인공이

앞으로 마주할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들을 어떤 멋진 콤비플레이로 대처할지 기대됩니다.

이 시리즈를 짧게는 7, 길게는 10여 년 전에 읽은 탓에 다음 이야기가 가물가물하지만

오히려 아무 기억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두 주인공을 만나게 된 게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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