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무차별 연쇄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치로이 고즈에는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후 삶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절망스러웠던 고즈에는 살인마가 자신을 죽이려 했는지 알고 싶었지만

결국 미제 사건으로 묻히면서 그녀의 희망도 그대로 꺾이고 말았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의 의뢰로 추리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미스터리 작가, 전직 형사 등이 멤버인 추리 집단 연미회

각자의 가설과 추론을 바탕으로 연쇄살인사건의 진상은 물론 범인의 동기를 파악하려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일곱 번 죽은 남자’, ‘닷쿠&다카치 시리즈로 잘 알려진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작품입니다.

최근 전작이 2016인격전이의 살인이었으니 무려 3년 만에 신작이 출간된 건데,

2013~14년에 걸쳐 봇물처럼 신작이 쏟아져 나왔던 것에 비하면 공백이 꽤 길었던 셈입니다.

특히 북로드와 한스미디어에서만 나왔던 그의 작품이 아프로스미디어에서 나왔다는 소식에

어쩌면 무척 독특한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진 게 사실입니다.

 

연쇄살인마의 손아귀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헤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의 고통과 함께

왜 자신이 공격당해야 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하던 이치로이 고즈에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소개로 연미회라는 이름의 추리 전문가들과 만납니다.

하지만 형사가 제공한 자료 외에 손에 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그들은

나름 전문가들이라고는 해도 고즈에가 듣기에 엉뚱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추론만 내놓습니다.

미씽링크, 밀실트릭, 12, 3자 범인설 등 갖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고즈에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라고 할 정도로 대책 없는 난상토론만 벌어집니다.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일곱 번 죽은 남자그녀가 죽은 밤처럼

이 작품 역시 예상치 못한 막판 반전 덕분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 쾌감을 느낀 건 맞지만

정작 이야기의 몸통이 연미회멤버들의 엉뚱한 추리로 채워진 탓에

읽는 내내 고즈에와 똑같은 답답함과 분노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연미회멤버들은 하나같이 주인공을 못 살게 구는 덜 떨어진 조연들 캐릭터와 흡사했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물론 조금 전의 주장까지 쉽게 뒤집는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막판에 폭로되는 진실의 무게가 육중해진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배보다 배꼽이 과도하게 커진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느 시점부터 이 궤변들을 계속 읽어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는데,

그래도 뭔가 중요한 단서가 소개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건너뛰지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400p가 조금 넘는 분량이지만 연미회분량을 100p 이상 들어냈어도 충분했을 것 같고,

오히려 막판 반전에 조금 더 비중과 분량을 할애했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제 면에서 보면 옮긴이의 글에서도 강조했듯 이 작품의 핵심 소재는 동기입니다.

주인공 고즈에가 연미회를 찾아온 것도 자신을 죽이려 한 자의 동기를 알고 싶어서였고,

연미회의 추론 가운데 상당 부분도 연쇄살인범의 동기에 할애되고 있습니다.

, 막판 반전의 저변에 흐르는 중요한 서사도 바로 동기에 의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강조한 동기는 일반 미스터리 속 동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진짜 그런 동기를 지닌 살인마가 존재할까?

이런 의문이 절로 들게끔 만드는 진실 속 동기는 그래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한편으론 연미회의 찌질한 추리 때문에 분량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너무 짧아 아쉽기만 했던 막판 반전은 과연 니시자와 야스히코!”라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다소 갈릴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팬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품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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