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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숭이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9
J. D. 바커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20년 2월
평점 :
납치한 희생자의 귀, 눈, 혀를 차례로 적출해 가족에게 보내다가
마지막에는 시체를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연쇄살인마 4MK(네 마리 원숭이 킬러).
5년째 그를 추적해온 4MK 전담반의 형사 샘 포터는
어느 날 4MK로 추정되는 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출동한다.
버스에 치여 얼굴이 뭉개진 신원불명의 사망자는 한쪽 귀가 담긴 상자를 들고 있었다.
이제 샘 포터와 4MK 전담반은 어디선가 귀를 잃고 죽어가는 마지막 피해자를 찾아야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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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제 취향에 맞는 짜릿한 고속 스릴러 한 편을 읽었습니다.
살짝 도가 높은 폭력성, 책갈피를 낄 틈을 주지 않는 밀도와 속도감을 갖춘 이야기,
매력적인 형사와 범인 캐릭터 등 스릴러의 미덕을 아주 잘 갖춘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나 테스 게리첸의 ‘의사 3부작’을 좋아하는데
‘네 번째 원숭이’는 그 작품들과 거의 맞먹는 재미와 만족도를 지녔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어서 별 0.5개를 뺐지만 그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소시오패스인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살인과 고문 교육’을 받은 범인은
말 그대로 청출어람(?)이란 표현에 걸맞을 정도로 완벽한 소시오패스로 성장했고,
그만의 ‘정의로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참혹한 연쇄살인극을 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범인을 추적해온 중년의 시카고 경찰 샘 포터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4MK의 마지막 희생자를 찾는데 열을 올리는 동시에
4MK가 남긴 일기장 – 소시오패스로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한 유년의 기록 – 에 몰두합니다.
어쩌면 그곳에 마지막 희생자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편, 4MK의 마지막 희생자인 10대 소녀 에머리는 한쪽 귀가 잘린 상태에서
어딘지 모를 공간에 감금된 채 끔찍한 공포와 맞서 싸우는 중입니다.
샘 포터의 수사, 범인의 일기, 에머리의 공포 등이 한 챕터씩 번갈아 전개되는데,
챕터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덕분에 안 그래도 빠른 이야기가 더 빠르게 느껴집니다.
특히 범인의 일기 속 내용은 워낙 충격적이고 잔혹한데다
‘부모에 의해 철저하고 견고하게 키워진 소시오패스’라는 전례 없는 설정 때문에
주인공 샘 포터의 수사보다 더 긴장감을 발산합니다.
다만 독자에 따라 꽤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는 끔찍하고 잔혹한 내용들이 많아서
작품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렇듯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별 0.5개를 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550여 페이지의 분량 가운데 동어반복 또는 정체된 내용들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 읽고 보면 샘 포터와 전담반의 수사 과정은 그리 역동적이지도 빠르지도 않습니다.
미궁에 빠지고, 위기에 빠지고, 돌파구를 찾는 등 전형적인 시퀀스들은 전부 등장하지만
어쩐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 감금된 마지막 희생자 에머리의 챕터는 비중에 비해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범인의 일기 역시 내용은 충격적이지만 필요 이상의 분량이 할애됐다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주인공 샘 포터의 캐릭터인데, 자세히 쓰면 길어질 수 있어서 간단히 비유만 하면,
샘 포터는 실은 요 네스뵈가 창조한 상처투성이 형사 해리 홀레 같았어야 합니다.
중반에 드러난 그의 비극적인 개인사는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깊은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반부의 그는 이언 랜킨이 창조한 유쾌하고 삐딱한 존 리버스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건 반전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몰입하기 어렵게 만든 ‘잘못된 설계’라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 나와도 초반의 ‘웃고 농담하는 샘 포터’가 자꾸 생각이 나서
그의 비극과 상처에 공감하며 따라가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얘깁니다.
앞서 말한대로 분명 매력적인 주인공이긴 하지만,
이 ‘잘못된 설계’는 제겐 마지막 장까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너무도 불편하게 여겨졌습니다.
작가는 후속편을 염두에 둔 듯한 꽤나 큰 떡밥을 남겨놓은 채 작품을 마무리했습니다.
미국에서 이 작품이 2017년에 출간됐으니 어쩌면 후속편이 이미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샘 포터의 활약은 물론 매력적인 전담반 동료들과의 팀플레이도 기대되는데
부디 빠른 시간 안에 후속편 소식이 들려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