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여자들 스토리콜렉터 82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을 때 출판사 홍보글은 물론, 가능하면 띠지나 뒷표지의 카피도 안 보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고 책읽기의 재미를 떨어뜨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처럼 작가의 이름이 생소할 땐 도리 없이 몇몇 정보를 확인하곤 합니다.

대략 출판사 이름, 제목과 표지가 풍기는 뉘앙스, 번역가 등의 순으로 확인하는데,

일단 북로드에서 낸 작품이라 믿음이 갔고,

책 앞날개의 작가 소개를 얼핏 보니 덴마크 작가라 더 구미가 당겼습니다.

차갑고 잔혹한 북유럽 스릴러의 새 작가와 만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그런데...

초중반까지 읽는 동안 뭔가 기대와 어긋난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오프닝을 장식한 살인사건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는데,

사건을 수사하는 두 주인공만 놓고 보면 왠지 코믹하고 가볍고 좌충우돌의 느낌이 드는,

말하자면 코지 미스터리의 냄새가 강하게 진동했기 때문입니다.

다 읽고 확인한 띠지와 뒷표지,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콧대 높고 깐깐한 고교 동창이자 내 여자를 빼앗아간 단 소메르달과의 공동수사라니!”

연륜을 자랑하는 수사관 플레밍 토르프와 동물적 감각이 번득이는 광고쟁이 단 소메르달,

평생 절친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7일간의 공동 수사!”

 

아마 이 홍보글을 먼저 봤다면 전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공들 캐릭터가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겨우 견뎌낸(?) 초중반을 지나면 이 작품의 미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북유럽으로 유입된 제3세계 여성 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과 그녀들을 향한 추악한 마수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끔찍한 살인극과 정교한 미스터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소개글만 보고 선택하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작품인데,

물론 주인공들 캐릭터 때문에 만점을 주진 못했지만 충분히 매력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피오르에 인접한 소도시 크리스티안순에서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시신이 연이어 발견됩니다.

자신이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첫 사건이 벌어진 탓에 엉겁결에 수사에 끼어든 단 소메르달은

절친이지만 한때 지금의 아내를 놓고 경쟁했던 수사과장 플레밍을 돕는 처지가 되는데,

문제는 아마추어인 소메르달의 이 워낙 뛰어나서 경찰의 입장이 곤란해졌다는 점입니다.

결국 소메르달과 플레밍은 본의 아니게 각자 수사를 진행하게 되고,

막판에 자신들이 획득한 정보와 추리를 공유함으로써 멋지게 사건을 해결합니다.

 

사감(私感)으로 얽힌 두 주인공의 미묘한 상황을 지켜보는 일은 코지 미스터리의 재미를,

외국인 여성 노동자에 얽힌 비극적인 사건을 지켜보는 일은 스릴러의 재미를 주는 작품인데,

다소 과한 우연처럼 얽힌 등장인물 간의 관계만 제외하면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이야기라

한 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의 소개에 따르면 이 콤비의 활약상을 그린 시리즈가 7편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이 작품이 2007년에 출간됐으니 국내 소개는 많이 늦은 편이긴 합니다.)

북로드에서 이 시리즈를 계속 출간할 계획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코지 미스터리 취향도 아니고, 차갑고 잔혹한 북유럽 스릴러의 냄새도 덜하지만

아무래도 아나 그루에라는 작가 이름을 계속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뭐라고 딱 꼬집을 순 없지만 독자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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