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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앤 블루 ㅣ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정세윤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블랙 앤 블루’는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 시리즈’ 중 한국에서 8번째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 편인 ‘매듭과 십자가’가 2015년에 출간됐으니 벌써 만 5년이 다 됐는데,
이만하면 해리 보슈, 해리 홀레, 피아&보덴슈타인 등 쟁쟁한 캐릭터들과 맞먹는 실적입니다.
네 번째 작품인 ‘스트립 잭’을 제외하곤 모두 읽은 터라 나름 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블랙 앤 블루’는 좀 짜게 매긴 평점대로 전작들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이었습니다.
전작들에 비해 압도적인 분량에다 작가의 서문에도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이 엿보였지만
개인적으론 무척이나 불편하고 힘든 책읽기였던 게 사실입니다.
리버스가 마주한 사건 또는 미션은 분량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의자에 묶인 채 2층에서 떨어져 사망한 석유회사 직원의 미스터리가 메인이지만,
30년 전 자취를 감춘 소시오패스 바이블 존을 모방한 듯한 연쇄살인마에 대한 추적,
20년 전 멘토였던 선배 형사와 함께 체포했던 한 살인범에 대한 원죄(冤罪) 논란 및 감찰,
거기에 예전의 연인이던 질 템플러 경감이 제보한 대규모 마약 사건까지
두 세편의 작품에 나뉘어 실려도 충분할 것 같은 큰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다뤄집니다.
물론 이 이야기들 가운데 대부분은 하나의 큰 줄기로 점차 수렴되긴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 산만하거나 복잡하고, 그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탓에
도무지 집중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여러 갈래로 전개되던 미스터리들이 중후반 이후 급격하게 한 줄기로 수렴되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다분히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 보였습니다.
‘하필’이란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그 많은 미스터리가
스코틀랜드 북부의 애버딘이란 도시와 그곳에 자리한 석유회사에서 접점을 갖게 되는데,
리버스 스스로도 “또 애버딘이야?”라고 자탄할 만큼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공간도 리버스의 홈그라운드인 에든버러를 비롯, 글래스고, 애버딘으로 분산되는데,
인명이나 지명을 가리키는 은어 또는 은유적 표현들이 각주나 보충설명 없이 등장한 탓에
리버스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또 누구와 만나고 있는 건지 종종 헷갈리곤 했습니다.
물론 이런 경향은 전작들에서도 자주 목격됐지만 이번처럼 혼란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그 이유가 원작 탓인지 아니면 8번째 작품에 와서 바뀐 번역자 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또는 리버스 특유의 비꼬는 듯한 블랙 유머가 잘 살아있고,
번역에서 큰 위화감을 느낀 대목이 없었던 걸 보면 아무래도 원작 자체가 산만했던 것 같은데
시리즈를 처음부터 쭈욱 읽어온 독자조차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 작품으로 존 리버스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 리버스 시리즈를 애정했던 독자로서 너무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결국 어느 하나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줄거리 정리 자체가 쉽지 않아서 생략했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인터넷 서점이나 책 뒷표지의 요약문은 읽지 말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읽기도 전에 김빠지게 만드는 소소한 스포일러들이 꽤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