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의 윤무곡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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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잔혹한 토막살인을 저질러 시체배달부란 별명을 얻었지만 지금은 악명 높은 막강 변호사가 된 미코시바 레이지. 그의 여동생 아즈사가 30년 만에 찾아와 친어머니 이쿠미의 변호를 의뢰한다. 이쿠미가 재혼한 남편을 자살로 위장해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것. 평소와 다르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던 미코시바는 갈등 끝에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쿠미는 구치소에 접견 온 아들 미코시바에게 혐의를 부인한다. 미코시바는 30년 만에 마주한 친어머니이자 피고인 이쿠미를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짊어진 가해자 가족의 비참한 과거와 마주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처음으로 나카야마 시치리를 만난 건 2014살인마 잭의 고백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을 탐독하기 시작한 건 2017년 겨울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부터입니다. 그때부터 24개월 만에 12번째 작품을 읽게 됐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생산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작가입니다.

 

악덕의 윤무곡은 그의 대표 시리즈인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매 작품마다 그의 참혹한 과거, 즉 어린 소녀를 잔혹하게 토막살해한 시체배달부라는 점이 사건 자체 또는 사건 해결과정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곤 했지만, 이번처럼 그 사건으로 인해 절연했던 그의 가족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물론 전작인 은수의 레퀴엠에서 그가 자신을 키워준 진짜 부모라고 여기는 의료소년원의 교도관 이나미 교도관을 변호한 적은 있지만, 친가족의 등장은 아무래도 무게감이나 긴장감 면에서 더욱 압도적일 수밖에 없는 설정입니다.

 

사건을 의뢰한 여동생 아즈사는 말할 것도 없고 재혼한 남자를 자살로 위장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 친어머니 이쿠미와의 만남은 미코시바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범죄로 인해 가족은 파탄 났고 아버지는 자살에 이르렀으며 이쿠미와 아즈사 모녀는 가는 곳마다 비난에 시달리며 고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단서만 놓고 보면 유죄임이 분명해 보이는 어머니 이쿠미를 지켜보면서 미코시바는 소위 소시오패스는 유전되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진지하게 마주합니다. 더구나 29년 전 아버지의 자살마저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되면서 지금까지 유지해온 자기 안의 짐승과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나카야마 시치리답게 막판 거듭된 반전 덕분에 미스터리의 완성도와 재미는 분명 쏠쏠합니다. 다만,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은 독자라야 100%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번 작품에서의 미코시바의 캐릭터는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위화감을 느끼게 만들었는데, 특히 시체배달부라는 용서받지 못할 어린 시절의 죄에 대한 그의 태도가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편인 속죄의 소나타엔 자신이 죽인 소녀의 가족에게 매달 거금을 보냈다는 설명이 있고, 이후 작품들에서도 속죄라는 그의 운명이 나름 진정성 있게 그려지곤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의 미코시바는 시체배달부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원색적인 비아냥과 함께 정의를 외치지만 실은 위선적인 악인들이라는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30년 만에 나타난, 살인혐의를 받는 친어머니를 변호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미코시바 스스로 예민해지고 날이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건 이해되지만, 이전 작품들을 읽을 때완 달리 이런 인물이 제대로 된 벌을 받지 않고 변호사가 돼있는 게 올바른 현실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 메인 테마는 아니지만, “소시오패스는 유전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작가의 의도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있다기 보다는 어딘가 억지스럽고 인공적인 느낌도 들었습니다. 더불어, 마지막에 밝혀지는 어머니의 살인의 진상 역시 다소 납득하기 어렵게 설명되고 있어서 맥이 빠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살인용의자인 친어머니를 변호한다는 건 이전 작품들에 비해 무척 세고 독한 설정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마치 어떤 주장을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진 듯 해서 실망감이 많이 든 게 사실입니다.

시체배달부였던 미코시바의 캐릭터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인 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론 더는 그 과거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계속 그 과거에만 함몰된다면 어떤 사건이 등장하든 동어반복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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