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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붙잡힌 살인귀 ㅣ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시가 아키라 지음, 김진환 옮김 / 아르누보 / 2019년 6월
평점 :
2년 전인 2018년 초에 읽은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은 꽤나 흥미롭고 독특한 인상을 줬습니다.
택시에 두고 내린 스마트폰이 한 사람의 인생을 괴멸시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스마트폰에 무심코 저장한 개인정보와 무분별한 SNS 활동이
악의를 가진 자에 의해 어떻게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리얼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전작의 범인이 등장할 뿐 주인공도 다르고 소재도 다르지만
(책 표지도 비슷하고) 어쨌든 시리즈처럼 포장을 하고 출간됐는데,
알고 보니 국내 출판사도 다르고 단지 작가가 같은 사람이란 것 외엔 공통점이 없습니다.
처음엔 국내 출판사에서 전작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길디 긴 제목을 붙인 줄 알았는데
도서정보를 보니 원제 자체가 번역 제목과 동일하더군요.
즉, 작가 본인이 무슨 이유에선지 이런 제목을 붙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전작에 비해 한참 부족하고 어설픈 이야기라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의 주된 소재는 다크웹, 해킹, 랜섬웨어, 가상화폐입니다.
산속에서 암매장된 여자들의 사체가 발견되고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되지만,
그는 유독 한 사체에 관해서만큼은 모르는 일이라 발뺌합니다.
그리고 3년 전 다크웹에서 자신의 멘토였던 M의 소행일 수 있다는 묘한 진술을 합니다.
가나가와 현경 사이버범죄대책과의 키리노는 FBI도 탐내는 IT전문가입니다.
상부의 요구로 이 사건에 투입된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수사를 진행시키지만
M의 살인행각은 그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연인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맙니다.
모든 것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제어되는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상 가능한 최악의 상황들이 총출동합니다.
불법적인 영상이나 마약의 거래는 물론 살인청부까지 벌어지는 다크웹의 심연,
타인의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까지 탈탈 털 수 있으며
심지어 경찰 네트워크를 마비시키고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는 악의적 해킹 기술 등
문명의 발전이 개인과 사회를 어디까지 파멸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거기에, 연이어 벌어지는 끔찍한 납치와 살인까지 곁들여져서
독자에 따라 무척이나 불편한 감정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작이 정말 현실에서 벌어질 것 같은 인터넷 세상의 참극을 리얼하게 그렸다면,
이 작품은 캐릭터 설정은 물론 고도의 IT 기술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도 꽤나 어설퍼 보입니다.
경찰이 된지 6개월밖에 안 된 IT 전문가가 베테랑 형사처럼 활약하는 장면은 애교라고 쳐도,
아마추어라도 쉽게 추리하고 연상할 수 있는 IT 수사기법을 마치 대단한 기술처럼 묘사하거나
극강의 해커를 상대하면서 쉽고 단순한 테크닉을 구사하곤 자화자찬하는 듯한 대목에선
한숨과 함께 웃음까지 나왔습니다.
또, 마지막에 나름 배배 꼬아놓은 반전은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진범의 사연은 그가 저지른 범죄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감상적으로 묘사됐습니다.
전작만큼의 독특함과 충격을 기대하고 읽은 터라 아쉬움이 너무 컸던 건 사실이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마나 허술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잠시 짬을 내서 읽어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렇게 쓰면 안 되는구나, 라는,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교훈을 소름 돋을 정도로 생생히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