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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2015년 그해의 손꼽을만한 대작이자 찬호께이의 한국 첫 출간작인 ‘13.67’으로 시작으로,
‘기억나지 않음, 형사’, ‘망내인’, ‘풍선인간’까지 그의 작품은 놓치지 않고 계속 읽어왔습니다.
‘염소가 웃는 순간’만 못 읽었는데 실은 조금은 상투적인 호러물처럼 보인데다
다른 이도 아닌 찬호께이의 호러라 역설적이게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읽게 될 것 같긴 하네요.^^;)
아무 정보도 없이 집어든 뒤에야 ‘디오게네스 변주곡’이 단편집이란 걸 알게 됐는데,
목차를 보니 무려 17편이나 수록돼있어서 반쯤은 놀랐고, 반쯤은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수록작이 너무 많아서 놀란 건 당연한 일이지만,
찬호께이만의 묵직한 서사가 담긴 장편을 기대했던 탓에 아쉬움을 느꼈던 건데,
다 읽고 보니 나름 찬호께이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돼준 작품이었습니다.
짧은 중편부터 단편, 장편(掌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들은 물론
도시괴담, 환상특급, SF 등 여러 장르를 한데 맛볼 수 있었고,
미스터리를 그린 단편들 역시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새삼 찬호께이의 내공이 얼마나 강한지, 또 작품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깨닫게 됐는데,
아직까지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 ‘13.67’을 읽었을 때만 해도
“경찰소설의 대가가 홍콩에서도 등장했구나!”, 라는 기대만 들었을 뿐
이토록 다양한 소재와 장르에 관심을 가진 작가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13.67’ 이후에 출간된 작품들 가운데 기대했던(?) 정통 경찰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매 작품마다 소재가 됐든, 캐릭터가 됐든, 전개가 됐든 무척 특이한 경향을 내비쳐왔기에
그런 이력을 생각해보면 ‘디오게네스 변주곡’이 크게 놀랄 작품은 아닌 게 사실입니다.
다만, 여전히 ‘13.67’의 여운이 잊히지 않는 걸 보면
개인적으로 그에 버금가는 장대한 서사의 경찰물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록작 모두 워낙 개성이 강한 작품이라 호불호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정통 미스터리 쪽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다크웹과 연쇄살인을 소재로 독자의 눈을 속이는 기묘한 트릭이 빛나는 ‘파랑을 엿보는 파랑’,
추리소설가로 입문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한 청년의 이야기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
짧은 분량에도 반전의 임팩트가 강한 ‘내 사랑, 엘리’,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환상특급 같은 매력을 지닌 ‘시간이 곧 금’ 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찬호께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의 다채로운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찬호께이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의 명품들을 찾아다니게 될
좋은 계기가 돼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