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잠긴 남자 - 상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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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나카노시마의 한 호텔에 장기 투숙 중이던 노인 나시다 미노루가 사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내리지만 그의 지인인 유명작가 가게우라 나미코는 명탐정이자 교수인 히무라 히데오와 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사건의 조사를 부탁한다. 입시철이라 바쁜 히무라 대신 아리스가 조사에 나서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 자물쇠로 잠긴 것처럼 어둠에 휩싸여 한 치 앞을 들여다볼 수 없는 나시다의 인생. 과연 이 남성은 대체 누구인가? 그 죽음에 얽힌 진상은?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이름만큼은 너무나도 낯익고 친숙한 아리스가와 아리스지만 아쉽게도 읽은 작품이라곤 외딴섬 퍼즐한 편뿐입니다. 서평을 쓰지 않던 시절이라 짧은 메모만 남겨놓은 외딴섬 퍼즐은 나름 재미있게 읽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스타일이나 취향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건지 그 후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자물쇠 잠긴 남자는 후한 평점과 호평을 준 어느 독자의 서평을 보고 읽게 된 작품인데, 결과부터 말하면 역시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저와는 잘 안 맞는 작가라는 점을 재확인한 셈이 됐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나시다 미노루의 사인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자살이라면 동기는? 타살이라면 범인은? 자물쇠로 잠긴 듯한 정체불명의 노인 나시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지만 상권 100페이지쯤, 그러니까 미스터리에 빠져들기도 전에 먼저 품은 의문은 분량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 노인의 사인과 베일에 싸인 정체를 밝혀내는 게 전부인 것 같은데 상하권 합쳐서 7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이 과연 필요할까? 호텔에서 연쇄살인이 벌어질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많은 분량이 뭘로 채워질까?

이 의문들은 결국 다 읽은 뒤에도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방대한 분량을 채운 내용들이 실은 비슷한 탐문의 동어반복 또는 없어도 무방한 호텔 주변의 풍경묘사나 지리적, 역사적 소개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관대하게 보면 나시다라는 인물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은유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700페이지의 분량도, 상하권의 분권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히무라가 등장한 이후 급격하게 속도가 빨라지는 진실 찾기역시 다소 맥도 빠지고 특별히 반전이라 할 대목도 안 보입니다. 눈썰미가 좀 뛰어나다는 것 말곤 경찰마저 쩔쩔 매는 히무라가 한 일은 별로 없고, 가장 큰 미스터리였던 나시다의 사인과 그 배경 역시 분량에 비해 힘도 매력도 발산하지 못했습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서평에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마지막에 드러난 진실은 평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만일 자물쇠로 잠긴 듯한 나시다라는 인물의 굴곡진 삶이라도 심금을 울렸다면 모르겠지만,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나시다의 과거는 별다른 여운을 남길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날의 실수, 그로 인한 파국과 재기, 그리고 인력에 이끌린 듯 찾아온 오사카의 호텔 등 여러 가지 장치들이 설정돼있지만 역시 평범함을 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미스터리와 휴먼 스토리 모두 독자에게 어필하기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시 분량 문제로 돌아가, 이 이야기가 과연 7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이 필요했나, 라는 가장 큰 아쉬움을 곱씹어보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저와는 여러 가지로 잘 안 맞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지만 책장에 갇혀있는 그의 작품이 몇 편 있으니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큰 기대 없이 읽다가 예상외의 만족을 맛볼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솔직히 자신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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