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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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안주’, ‘피리술사에 이은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고향에서 참혹한 사건을 겪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숙부가 사는 에도로 온 소녀 오치카가

흑백의 방이란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특히 기이하거나 가슴 아픈 괴담)를 들어주면서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단절했던 바깥세상과 화해한다는 것이 시리즈의 큰 틀입니다.

 

에도 시대 괴담들의 집대성인 미야베 월드 2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이 시리즈는

딱히 미스터리의 심도나 충격이 강한 편도 아니고, 호러물로서도 다소 덜 무서운 편이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하지만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괴담들로 채워져 있고,

에도 시대의 문물을 맛깔스럽게 표현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필력을 만끽할 수 있어서

일단 첫 편을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책갈피를 끼워놓고 쉬워가기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네 번째 작품 속 오치카는 첫 등장 때보다 두 살을 더 먹은 19살 처녀로 성장했고,

그녀가 듣게 된 괴담들 역시 무게감, 스케일, 주제의식 면에서 훨씬 더 묵직해졌습니다.

그림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의 세상 사이에 을 내려는 한 화가의 이야기(미망의 여관),

우연히 만난 귀신 덕분에 유명 요릿집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부부의 이야기(식객 히다루가미),

수십 년 전 지옥이나 다름없는 산골짜기에서 겪은 기괴한 이야기를 들려준 무사(삼귀),

아름다운 딸들을 신에게 희생양으로 바쳐야 했던 한 향료가게 가문의 비극(오쿠라 님)

거의 중편급의 분량에 가까운 네 작품이 수록돼있습니다.

 

이전 세 작품들도 그랬지만 삼귀의 수록작들은 오치카에게 특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에 집착하며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오치카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게끔 만드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마지막 수록작인 오쿠라 님은 거의 전방위적으로 오치카를 압박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가문의 저주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평생 고립된 삶을 살았던 괴담 손님 오우메,

고용살이 도중 사고로 집에 돌아와 새 출발을 하게 된 미시마야의 차남 도미지로,

낭인 무사 생활을 접고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된 (오치카의 마음을 흔든) 아오노 리이치로,

그리고 오치카 앞에 새로 나타난 다재다능한 세책방 작은 나리 간이치 등

모든 인물들이 오치카로 하여금 흑백의 방에 갇힌 삶을 내던지라고 조언합니다.

물론 오치카 스스로도 예전과는 달리 새로운 인생에 조심스레 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상처가 아문 오치카가 과연 이 시리즈를 계속 이끌어갈지 의문이 생겼는데,

마침 편집자의 후기를 보니 이 다음 작품부터는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집으로 돌아온 차남 도미지로와 세책방의 작은 나리 간이치가 눈에 띄었는데,

과연 이들이 오치카와 함께 멋진 3총사가 되어줄지,

아니면 오치카를 살짝 뒤로 밀어내고 새로운 주인공이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삼귀의 후속작인 금빛 눈의 고양이가 최근 출간됐는데,

오치카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너무 궁금해서 조만간 구해 읽을 생각입니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 스스로 오치카의 연애, 결혼, 양육 등 성장과정을 그리겠다고 공언했으니

오치카 없는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가 나올 리는 없을 거란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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