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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핀과 레일라는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귀가길 휴게소에서 핀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레일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녀가 남긴 것은 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작은 러시아 인형뿐.
적어도 핀이 경찰에 진술한 대로는 그렇다.
12년 후, 핀은 레일라의 언니 엘란과 약혼한다.
하지만 결혼식 직전, 핀은 경찰로부터 12년 전 실종된 레일라가 목격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엘란마저 레일라를 목격했다고 말하고, 집 앞에서 레일라의 러시아 인형까지 발견되자
핀은 패닉에 빠지는 것과 동시에 레일라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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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와 ‘브레이크 다운’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B. A. 패리스의 작품입니다.
가족, 배우자,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겪게 되는 공포와 혼란이 그녀의 주된 테마인데,
이번에는 실종 이후 12년 동안이나 생사를 알 수 없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레일라가
옛 연인인 핀과 그의 약혼녀가 된 언니 엘란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레일라는 러시아 인형과 이메일을 통해서만 핀과 엘란 앞에 나타납니다.
즉, 핀과 엘란으로선 곳곳에 놓인 러시아 인형과 수시로 날아드는 이메일이
진짜 레일라가 보낸 것인지, 누군가 레일라를 사칭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레일라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비밀까지 언급하자 두 사람은 더욱 충격에 빠집니다.
문제는, 왜 레일라가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이런 방법을 쓰는가, 하는 점입니다.
특히, 레일라의 옛 연인인 핀은 러시아 인형과 이메일이 등장한 뒤로 갈등에 빠지는데,
자신의 진짜 사랑이 레일라와 엘란 중 누구를 향한 것인지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자신이 받은 러시아 인형과 이메일에 대해 엘란에게 알리지 않기 시작하면서
심리적 갈등과 막연한 공포와 무책임한 기대감이 한꺼번에 뒤섞인 혼란을 겪게 됩니다.
무엇보다 레일라가 마치 ‘자신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뉘앙스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자
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엘란과의 관계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맙니다.
첫 작품인 ‘비하인드 도어’가 눈에 보이는 명백한 상대로 인한 충격과 공포를 다뤘다면,
‘브레이크 다운’은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스스로를 조기 치매로 의심한 주인공이
실체 없는 공포와 맞서 싸우다가 진실을 알아내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브링 미 백’은 어쩌면 이 두 작품의 딱 중간쯤 되는 서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러시아 인형과 이메일이라는 명백한 단서가 있긴 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보낸 레일라는 도무지 현실인지 착각인지 음모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핀은 12년 전 레일라가 사라졌을 당시 ‘살인용의자’로 조사를 받은 이력도 있기 때문에
레일라의 등장이 기뻐할 일인지, 두려워할 일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공포와 혼란에 빠집니다.
심리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사건보다는 캐릭터 플레이 위주의 서사이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긴 했어도) 핀의 공포와 혼란을 동어반복처럼 거듭 그린 점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이전 작품인 ‘브레이크 다운’을 읽고 쓴 서평에서도
“거의 절반 넘는 분량을 ‘사건’ 하나 없이 캐시의 공포심 묘사에 할애한 점”을 아쉬워했는데
‘브링 미 백’에서는 핀이 그런 아쉬움을 자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결말부에 드러난 진실이 꽤 충격적이고 놀라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얌전한 직구처럼, 또 다소 안이해 보이는 방식으로 설명된 점은
앞서 읽어 온 이야기들의 존재감을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극으로 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느낌이랄까요?
신비한 현상이나 존재에 의해 벌어지는 비현실적 공포보다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겪게 되는 공포는 훨씬 더 서늘하고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B. A. 패리스는 자신만의 특별한 영역과 매력을 구축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래도 ‘스토리의 힘’이란 면에서만 보면 앞선 두 작품보다는 살짝 처져 보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작품이 매년 여름마다 한 편씩 출간된 걸 보면 내년 여름에도 만나게 될 것 같은데,
그때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보다는 ‘스토리의 힘’으로 마무리되는 엔딩을 기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