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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강승희 옮김 / 천문장 / 2019년 3월
평점 :
작가 국적이 나이지리아라는 점도 특이하지만, 스토리나 캐릭터도 무척 독특한 작품입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코레드와 아율라는 모든 면이 정반대인 자매입니다.
언니 코레드는 유능한 간호사지만 외모와 몸집에 관한 한 늘 핸디캡으로 여기는 인물입니다.
반면 동생 아율라는 누구의 시선이든 단번에 사로잡고 마는 특별한 외모의 소유자로
자매의 어머니로부터 지나칠 정도의 편애를 독차지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두 자매만의 특별하고도 내밀한 비밀은 따로 있습니다.
즉, 동생은 소시오패스 연쇄살인마, 언니는 소위 ‘시체 처리 및 현장 청소부’란 점입니다.
동생 아율라의 살해 대상은 모두 사귀던 남자들입니다.
작가의 말대로 ‘교미 후 어슬렁거리는 수컷을 잡아먹는 거미 블랙위도우’를 닮은 아율라는
말 그대로 ‘그냥’ 사귀던 남자들을 살해합니다.
아율라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코레드는 자신의 직업을 살려 현장을 완벽히 청소하는 건 물론
거대한 물살 속으로 시체를 내던지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물론 코레드는 동생 아율라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막으려고 갖가지 충고와 조언을 합니다만
아율라는 살인을 저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SNS에 음식과 패션을 자랑질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소시오패스 연쇄살인마의 기질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매의 갈등은 아율라가 언니의 짝사랑 상대인 의사 타데 오투무를 유혹하면서 시작됩니다.
외모에 관한 열등감과 살인현장을 뒤처리해야 하는 짜증과 공포에 사로잡힌 코레드 입장에서
아율라가 자신의 짝사랑에게 접근하는 상황은 여러 모로 격분을 자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타데는 아율라에게 넘어갈 게 뻔하고, 분명 아율라의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지키고 싶고 새로운 희생자를 막고 싶지만 코레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중환자에게 자신의 답답한 처지를 독백으로 내뱉거나
타데에게 아율라와 사귀지 말라고 조심스럽고 우회적으로 충고하거나
아율라에게 타데 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과연 두 자매와 타데의 관계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무척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은 ‘누가 범인? 동기는 무엇?’ 등 일반적인 스릴러의 공식과는 거리가 먼 작품입니다.
오히려 ‘유쾌한 소시오패스와 발만 동동 구를 뿐인 공범’의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가볍거나 코믹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어딘가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도 들고, 동시에 긴장감도 놓치고 있지 않아서
일반적인 스릴러와는 사뭇 다른 특별한 간식 같은 느낌이 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연쇄살인’ 자체보다 ‘특별한 자매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
순도 높고 피비린내 나는 스릴러를 기대한 독자에겐 꽤 심심하게 읽힌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연쇄살인사건을 가장한 가족 이야기’라고 할까요?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 한 남자를 놓고 벌이는 자매의 연애전쟁,
거기에 동기도 없는 연쇄살인과 완벽한 뒤처리를 분담한 특이한 자매 캐릭터 등
꽤 다채롭고 흥미로운 소재들이 짧은 분량 속에 뒤범벅된 덕분에
독특한 제목에 눈길을 빼앗긴 독자라면 금세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