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거 범죄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3년째 미제 상태인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은 살인현장에 자신의 뚜렷한 지문과 함께

나를 잡아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겨 경찰 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새롭게 특별수사팀을 맡은 자오톄민은 범죄논리학 전문가 옌량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편, 8년 전 실종된 아내와 딸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전직 법의학자 뤄원은

선량한 두 남녀가 우발적으로 불량배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곤

고민 끝에 이들의 행위를 무증거 범죄로 완벽하게 포장해주기로 결심한다.

무관해 보이던 두 사건이 연결되면서 최고 법의학자와 천재 범죄논리학자의 대결이 시작되고,

마침내 상상하기 힘든 연쇄살인범의 동기가 드러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쯔진천은 동트기 힘든 긴 밤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작품으로 처음 만난 중국 작가입니다.

대하드라마 급의 묵직한 서사에 꽤 놀라운 엔딩까지 겸비한 작품이었는데,

1년도 채 안 돼서 그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 작품은 나쁜 아이’(미출간), ‘동트기 힘든 긴 밤과 함께 추리의 왕 시리즈로 불리는데,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능력자 형사 자오톄민과 천재적인 범죄논리학자 옌량입니다.

두 권밖에 못 읽어서 단정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실질적인 사건 해결은 옌량의 몫이고,

자오톄민은 바쁘게 뛰어다니긴 하지만 그다지 개성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무증거 범죄에서 실질적으로 대립하는 주인공은 옌량 VS 뤄안입니다.

옌량은 과거 뛰어난 경찰이었지만 불명예 퇴직 후 지금은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칩니다.

뤄안 역시 법의학자로서 명성이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아내와 딸이 실종된 뒤 경찰을 그만뒀고

지금은 민간기업에 적을 둔 채 여전히 아내와 딸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옌량이 용의자의 진술속의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는 범죄논리학 전문가라면,

뤄안은 사건 현장과 시신이 남긴 단서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는 물증 전문가입니다.

두 사람은 한때 절친이자 경찰 동료였지만,

논리로 진상을 밝히려는 경찰 VS 물증을 조작하여 무증거 범죄를 꾸미려는 용의자로 만나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건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됩니다.

 

한쪽에선 3년째 활개를 치고 다니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자오톄민과 옌량의 이야기가,

다른 한쪽에선 선량한 살인자를 위해 무증거 범죄를 만드는 뤄안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두 이야기는 우연히 발견된 단서 하나 때문에 한줄기의 이야기로 합쳐집니다.

그리고 옌량의 집요한 추리와 심문 끝에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물론

범인이 왜 3년 동안 특이한 방식으로 단서를 남겨가며 살인을 저질렀는지도 밝혀집니다.

 

사회파 미스터리, 사적 복수, 증거의 조작,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 천재적 인물 등

꽤 다양하고 묵직한 코드들이 작품 전반에 깔려있고,

특히 진상이 밝혀지는 후반부 막판은 독자로 하여금 여러 번 한숨을 내쉬게 할 정도로

안타까움과 동정심과 비장미를 곁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느낌은 앞서 읽은 동트기 힘든 긴 밤에서도 비슷하게 받았는데,

덕분에 벌써부터 쯔진천의 신작 소식이 언제쯤 들려오나,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굳이 아쉬웠던 점을 두 가지만 꼽자면,

가끔 이게 뭐지?”라는 의아함이 들 정도로 허술한 설명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주로 다혈질 형사 자오톄민의 수사 부분에서 이런 대목들이 발견됩니다.)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서 크게 흠 잡을 약점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실질적 주인공인 옌량의 추리가 너무 비약적으로 점프하는 점은 많이 아쉬웠는데,

그가 진범에게 심증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웠고,

용의자를 먼저 특정해놓고 논리를 통해 혐의를 입증한다는 그만의 고차방정식 이론역시

설득력이 좀 약했다는 느낌입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의 얼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유사하다는 논란이 많았다는데,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작품이라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큰 틀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어도 논란이 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덕분에 용의자 X의 헌신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캐릭터나 사건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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