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열대어 케이스릴러
김나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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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인 한태현과 그의 아내 이서린은 2년 전 추락사고로 현재 코마 상태.

그 중 이서린이 기적적으로 깨어나지만 최근 4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경찰로부터 남편이 연쇄살인 용의자라는 말을 들은 서린은 도무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시동생이자 오랜 친구인 정호의 도움으로 퇴원한 뒤 남편의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와 달리 남편에겐 또 다른 모습이 있었고 이에 서린은 충격을 받는다.

그 무렵, 2년 전 연쇄살인과 똑같은 수법의 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부랴부랴 재수사에 나서고,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한 서린 앞에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 ● ●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꽤 여러 겹의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있는 작품입니다.

코마상태에 빠져 있는 남편의 진실을 찾아가는 아내,

10여 년 전의 끔찍한 기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복수의 순간만 기다리는 한 여자,

타고난 기질과 습득된 잔혹함으로 중무장한 사이코패스,

죄책감과 분노와 약물에 찌든 통제 불능의 조현병 환자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한꺼번에 전개됩니다.

 

어쩌면 다들 평범하고 무해한 삶을 살 수도 있었던 인물들이지만

누군가는 추악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서 스스로 괴물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는 타고난 기질에 더해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괴물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는 하필 자신을 찾아온 운명 같은 저주 때문에 본의 아니게 괴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 누군가는 그 괴물들로 인해 인생의 경로가 엉망진창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이 단지 자신이 선택하고 사랑한 남자 때문에

끔찍한 괴물들이 들끓는 세상으로 끌려들어간 이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찾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10여 년 전의 끔찍한 사건이 곁들여지면서 이야기는 제법 풍성해집니다.

무관한 듯 보였던 인물들이 운명처럼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2년 만에 동일한 방식의 새로운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서울 외곽의 신흥도시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은

우연과 운명이 직조해낸 끔찍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밝혀집니다.

 

일단 이야기도 독하고 캐릭터도 워낙 강렬해서 잘 읽히는 작품입니다.

여러 겹의 사건과 적잖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혼란스럽지 않게 잘 설계돼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몇 대목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너무 급하게 또는 의도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다소 무리하거나 개연성 없는 상황을 만든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가령, 2년 만에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상태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서린을 찾아온 형사는

(독자에게 정보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짜고짜 서린을 취조하듯 몰아붙입니다.

, 아직 코마상태에 빠져있는 남편의 동생인 정호는 (서린이 진실찾기에 나서게 하기 위해)

아직 근육에 힘도 붙지 않았고 영양상태도 양호하지 않은 서린을 급하게 퇴원시킵니다.

그래놓곤 (또 다른 주요 인물인 희주를 투입하기 위해) 자신의 여친 희주에게

시동생과 서로 이름을 부르는 묘한 사이인 형수 서린의 간호를 부탁합니다.

, 자해와 폭력성이 위험한 수준인 조현병 환자가 가족의 요청으로 손쉽게 퇴원하는가 하면,

특별한 역할도 없는 형사에겐 무슨 이유에선지 가슴 아픈 가족사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인물들을 빨리 한자리에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체로 상식적이지 못해 보였고,

일부 인물들은 어떻게든 극단적으로, 독하고 세게, 그래서 독자의 관심을 끌도록 그리기 위해

다소 이입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캐릭터로 만들어졌습니다.

복수, 기억상실, 연쇄살인, 소시오패스 등 잔혹한 코드들이 독자에게 현실감을 획득하려면

사건이나 상황이나 캐릭터가 정말 그럴 듯 해보여야 하는데,

작가의 욕심(?)이 과해서였는지 몇몇 대목에서 허술하거나 극단적인 설정이 눈에 띄었고

그 덕분에 수시로 덜컹거리는 느낌이 들었던 건 무척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능 있는 한국 장르물 신인작가와의 만남은 무척 반가웠고,

다음 작품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포장보다는 현실감과 서사의 깊이에 더 방점을 찍은,

그래서 단단하고 내실 있는 이야기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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