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묻힌 거짓말 ㅣ 마틴 베너 시리즈
크리스티나 올손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다소 직설적인 의견이 포함돼있으니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틴 베너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꼬여낼 수 있는 바람둥이 변호사.
하지만 가족 모두 책임을 회피한, 죽은 여동생의 딸을 키우는 가슴 따뜻한 남자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마틴 베너가 피의자의 자살로 이미 종결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자신까지 용의자로 몰리는 등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드는 하드보일드 드라마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스웨덴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읽은 북유럽 스릴러와는 사뭇 분위기가 많이 다른 작품입니다.
수시로 내리는 비 외에는 딱히 북유럽의 풍광을 느끼기도 어려운데다
서사 역시 대중성과 오락성이 강한 영미권 작품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인공인 변호사 마틴 베너의 캐릭터가 이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데,
다분히 세속적이고 이기적인데다 물질과 욕망에 충실한 할리우드 주인공 같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 애인이자 현재는 친구이며 언제든 잠자리를 함께 하는 변호사 루시와 동업 중입니다.
두 사람은 (들키지만 않는다면) 서로 다른 사람과의 잠자리를 허용하는 이상한 관계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언제든 애정과 긴장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마틴 베너가 의뢰받은 사건은 좀 특이합니다.
다섯 건의 연쇄살인을 자백한 것은 물론 범인만 아는 단서들까지 진술했던 여자가
공판 하루 전날 갑자기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는데,
그 오빠라는 남자가 찾아와 동생의 무고함을 밝히고 사라진 조카를 찾아달라고 한 것입니다.
범행을 자백하고 자살한 여자라면 더는 사건성도, 파헤칠 것도 없다고 마틴은 판단했지만
자료들을 훑어보던 중 미심쩍은 부분들을 발견하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조사를 시작합니다.
마틴의 조사는 스웨덴은 물론 여자가 첫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른 미국 텍사스까지 확대되는데,
그 과정에서 마틴은 오히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기도 하고,
그의 말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엄청난 범죄조직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의 초반 1/3은 별 5개가 충분한 매력적인 전개를 보이지만,
그 뒤로 점점 매력이 떨어지면서 엔딩에서는 아쉬움과 실망감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반전의 가능성이 낮은 어려운 사건을 맡은 마틴이 의욕적인 출발을 하는 지점까지는
‘마틴 베너 시리즈’가 새로운 필독 목록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왠지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는 느낌과 함께,
작가가 꼬아놓은 복잡한 설정들이 점점 억지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클라이맥스 이후에 설명되는 ‘사건의 실체’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고,
스케일과 볼륨감을 키우기 위해 동원된 거대 범죄조직은 현실감이 부족해 보였으며,
‘범행을 고백하고 자살한 여자’의 사연 역시 예상치를 전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뭐랄까.. 알고 보면 단순한 구도인데 복잡하게 보이게끔 억지로 꼬아놓은 느낌이랄까요?
또, 함께 조사에 나선 마틴과 루시는 탐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는 환경에 갇혀 있었고,
나름 예리한 추리를 하긴 해도 특별한 반전을 끌어낼 정도는 아닙니다.
기대했던 주인공이 무력한 모습 끝에 다소 애매하게 엔딩을 맞은 대목은 가장 아쉬웠습니다.
“마틴 베너 시리즈 2탄을 기대하게 하는 열린 결말”이라고 출판사가 공개적으로 소개했으니
이 작품의 엔딩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고 언급해도 스포일러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2탄’을 기대하게 만드는 긴장감 넘치는 결말이라기보다는
좀 허무하고 약간은 찜찜함까지 느껴지는 결말이라 과연 후속작을 읽게 될지 의문입니다.
오랜만에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났지만 허술한 서사 탓에 그 매력을 만끽하지 못한 셈인데,
말 그대로 용두사미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