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부인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아날로그와 에로틱이 뒤섞인 듯한 묘한 뉘앙스의 제목과 표지에 끌려 집어든 작품입니다.

기대한대로(?)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를 배경으로 무척 클래식한 만연체의 문장과 함께

‘19판정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성적 담론으로 꽉 찬 작품입니다.

 

제국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풋내기 고교생 지로가

자신의 집 별채에 머물고 있는 백작부인과 함께 보낸 기기묘묘한 하루를 다루고 있고,

거기에 덧붙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끼어듭니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한 가지 줄거리만으로 요약해낼 수 없는 압도적인 스펙트럼을 지녔고,

옮긴이의 말의 부제는 이상한 나라의 지로라고 할 만큼 줄거리 소개가 곤란한 작품입니다.

 

상하이에서 온 고급 창부’, ‘전쟁 스파이’, ‘지로 할아버지의 첩의 소생

다양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괴소문에 휩싸인 정체불명의 백작부인은

지로와 함께 하루를 보내며 자신이 겪은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을 들려줍니다.

그녀는 남자의 고환을 짓바수는특기를 습득하게 된 사연과

전쟁의 참화 속에서 그 특기를 직접 실행했던 화려한 전력을 들려주기도 하고,

여자를 안기만 해도 사정해버리는 지로를 실컷 놀리거나 위로해주기도 합니다.

 

백작부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지닌 고교생 지로 역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집니다.

곧 전쟁터로 끌려갈 자신의 운명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세상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그는 역시 미성년자인 사촌여동생 호코와 이상한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백작부인에 대한 호기심 중 성적인 부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호색한처럼 망동을 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이 작품에서 내내 성기에 테러(?)를 당하는 참사를 겪는데,

이 언밸런스한 캐릭터 설정 때문에 독자는 수시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짓게 됩니다.

 

이 작품에는 성과 성기에 관한 꽤나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남자의 성기는 아주 폭력적이거나 거꾸로 무기력하게 파괴 또는 거세당하는 양면성을 보이고,

여자의 성기는 관찰의 대상 또는 성숙미라는 약간은 소극적인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지로의 성기가 야구공이나 백작부인의 손에 의해 무참하게 테러를 당한 뒤

하녀, 사촌여동생, 친구의 엄마 등에게 간호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장면에선

혹시 이 작품이 (출판사 소개대로) 남근 조롱 또는 권력 전복의 메시지를 시사하는가 싶지만,

사실 딱히 그렇게만 읽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 연합군과의 대결을 앞둔 일본의 불안한 정세, 곧 전쟁터로 끌려갈 운명인 지로의 불안감,

백작부인의 과거사에 등장하는 유럽에서의 참혹한 전쟁 상황 등을 보면

이 작품이 언뜻 반전(反戰)을 다룬 것 같아 보이지만 역시 그렇다고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성애 소설도, 페미니즘 소설도, 반전(反戰) 소설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기승전결 구성과 등장인물의 심리를 명확히 그리는 방식이 싫다.

독자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전쟁이나 성적 담론에서 굳이 어떤 메시지를 찾는 건 무의미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 설정도 이 작품의 판타지적 매력을 더하는데,

특히 백작부인과 지로가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호텔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공간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발산합니다.

아마 이런저런 이유로 옮긴이의 말의 부제가 이상한 나라의 지로!’인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한 줄로 함축한 가장 적절한 부제라는 생각입니다.

 

무척 흥미롭게 읽긴 했지만 남들에게 적극 추천하기도 애매한 작품입니다.

독자에 따라 흥미를 느낄 수도, (성적인)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다,

장황하게 쓴 서평대로 이 작품의 미덕이나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요구대로 마음대로 해석하고 재미있게 읽는것이 적절한 책읽기 방법이라면

이 작품의 미덕과 주제는 읽는 사람마다 전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른 독자들의 느낌과 해석이 무척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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