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전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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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에도 시대, 마을 하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괴멸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집들은 남김없이 파손되었고 사람들은 전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조사하러 간 무사들까지 연락이 두절된 가운데,

화상을 입은 채로 겨우 목숨을 건진 이 마을 소년에 의해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이 작품의 원제는 황신(荒神)입니다.

네이버에서 한중일 사전을 다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인데,

굳이 따지자면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드는 신이라고 할까요?

낯설기도 하고 애매해서 그런지 몰라도 번역 제목은 다소 직설적인 괴수전이 됐는데,

이 작품에는 원제와 번역 제목 그대로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드는 괴수가 나옵니다.

이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흉측한 모습과 극강의 파괴력을 지닌 괴수는

일본 동북지방에서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는 두 마을에 나타나

수많은 인명을 앗은 것은 물론 마을 자체를 초토화시켜버립니다.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이 작품에는 한국영화 괴물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시리즈 중 하나로 꼽는 영화 에일리언도 자주 떠올랐는데,

이 두 작품은 물론 괴수전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똑같은 출생의 비밀(?)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그릇된 탐욕과 악의가 그것입니다.

100여 년 전, 상대를 궤멸하기 위해 주술과 신의 힘을 빌려 괴물을 만든 이들은

자신들의 후대에 이 괴물이 어떤 비극을 만들어낼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괴물은 오로지 인간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찬 채 무차별적인 식인과 파괴를 자행하고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던 두 마을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물론 괴물을 만든 이들은 혹시라도 벌어질 비극을 막기 위해 마지막 방어선을 준비해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는 참극을 미리 막아낼 순 없었습니다.

 

67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에는 괴물과 인간의 대결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과 인간의 갈등, 100년 넘게 서로를 원수처럼 여겨온 두 마을의 갈등은

괴물 못잖게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설정입니다.

왕래는커녕 살짝 경계만 넘어와도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벌이던 고야마 번과 나가쓰노 번은

괴물의 등장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지지만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더 큰 갈등을 빚습니다.

하지만 각 번에서 괴물에 저항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힘을 모으면서

이야기는 극적인 변곡점을 맞이합니다.

거기에 더해 (괴물의 탄생에 개입했던) 가문의 저주를 물려받은 인물들의 비극이 드러나면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이야기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분량도 어마어마하고 인물이나 서사 역시 쉽게 정리할 수 없는 두께를 자랑하지만

괴수전은 한 번 잡으면 좀처럼 중간에 쉬어가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주술과 신의 힘으로 탄생한 괴물이라는 설정 자체를 못 받아들이는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설령 그런 취향이라 해도 괴수전황당한 괴물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한번쯤 도전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족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미야베 미유키의 근작이자 현대를 배경으로 괴물이 등장하는 비탄의 문

분권된 1~2권 중 1권만 읽고 접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현대에 등장하는 괴물이라면 괴물에일리언처럼 개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인데

비탄의 문은 제가 볼 때는 그와는 다소 거리가 먼 순도 높은 판타지 설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주술과 신의 힘으로 탄생한 괴물이라는 설정이 훨씬 더 황당할 수도 있지만,

그런 설정에 빨려 들어간 건 역시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스터리로서의 미덕들(재미와 반전 등)이 다소 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야베 월드 2의 모든 작품들을 애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데,

시대물의 아날로그 정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미야베 월드 2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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