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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버려진 연립에서 부패한 시신 한 구가 발견된다.
희생자는 생활보호대상자를 선정하는 보건복지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그는 사지가 묶인 채 굶주림과 탈수증상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명백히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 여겨졌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 피해자는 그 누구에게도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던 중 동일한 방식으로 살해된 현직 지방의회 의원의 시체가 추가로 발견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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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 반 동안(2017년 7월~) 무려 13편의 나카야마 시치리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는데,
북로드와 블루홀6가 독점한 나카야마 시치리 출간에 북플라자까지 (이 작품으로) 가세했네요.
봇물처럼 출간되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가운데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얼론입니다.
‘미코시바’, ‘와타세’, ‘고테가와’ 등 그의 주요 시리즈가 사이타마 현과 도쿄가 무대였다면,
이번 작품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상흔이 남아있는 센다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과거 보건복지사무소에 근무했던 두 남자가 아사(餓死)라는 방법으로 잔혹하게 살해당하자
미야기 현경의 도마시노는 피해자들의 과거를 추적하던 중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일본의 보건복지, 특히 기초생활수급이라든가 생활보호대상자의 실태가 얼마나 참혹한지,
담당 공무원과 극빈층 사이에 얼마나 큰 갈등과 대립이 있는지,
또,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몰고 온 예상치 못한 보건복지의 사각지대가 얼마나 큰지 등,
연쇄살인의 배후에 자리 한 일본의 그늘진 곳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리 유능한 형사가 아니더라도 이 사건의 용의자는 쉽게 특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카야마 시치리답게 막판에 반전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 역시 찬찬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시점쯤엔 쉽게 추리가 가능한 대목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미스터리보다는 메시지에 더 주력한,
즉 사회파 미스터리이긴 해도 일종의 사회고발성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말하자면, 나카야마 시치리는 ‘누가 범인?’ ‘왜?’라는 미스터리의 기본적 질문보다는
이런 참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급격하게 늙어가는 일본 사회, 그중에서도 대지진의 여파로 극빈층이 급증한 센다이에서는
한정된 재원, 폭주하는 복지신청, 늘어나는 부정수급, 공무원의 자의에 의한 대상자 선정 등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야기할 만한 요소가 나날이 늘어가는 상태였고,
그런 와중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씨앗 역시 이곳저곳에 흩뿌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씨앗 중 특별히 위험하고도 강렬한 것 하나가 오랜 시간 동안 증오심을 키운 끝에
탈수와 아사라는,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방법을 동원한 살인으로 발전했다는 설정은
비단 일본이나 센다이라는 특수한 배경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역시 곧 마주칠, 아니 이미 마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다룬 사건 자체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잔혹한 미스터리와 놀라운 반전을 기대한 독자에겐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또,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해도 메시지가 좀 과하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앞서 언급한대로 ‘사회고발성 다큐멘터리’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작가의 의도라면 그 나름대로 미덕과 의미를 갖췄다는 점 역시 사실입니다.
아쉬움도 분명 있지만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할 숙제를 남긴 작품이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