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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문신한 소녀
조던 하퍼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아리안 스틸이라는 백인 폭력조직의 우두머리 크레이그는 교도소에 수감된 몸이지만
교도소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지휘하는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그가 새로운 사형집행 영장을 발부합니다.
대상은 출소 후 조직의 연락책이 되라는 지시를 거부한 네이트입니다.
사형집행 영장에는 네이트뿐 아니라 그의 아내와 만 11살 된 딸 폴리까지 포함돼있습니다.
출소와 동시에 딸 폴리를 데리고 도주길에 오른 네이트는
사형집행 명령을 철회시키기 위해 아리안 스틸의 조직들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딸 폴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잔혹하게 훈련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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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자라는 이력을 가진 작가의 작품답게
돌직구처럼 날아가고 거침없는 액션이 난무하며 피비린내가 요동치는 스릴러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살짝 불편하거나 부담스럽게 읽히는 이유는
이제 11살인 소녀 폴리가 살인기계로 진화하는 과정이 작품의 큰 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네이트는 사형집행 철회를 받아내기 위해 아리안 스틸의 현장조직 여러 곳을 공격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내 폴리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폴리에게 ‘생존을 위한 폭력 사용법’을 가르쳐줄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폭력 사용법’은 죽은 형 닉이 자신에게 가르쳐줬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네이트에게 폭력의 기초부터 강도의 기술까지 전수했던 닉은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여전히 네이트의 뇌리에 자리 잡은 채 그의 행동거지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입니다.
아무튼...
네이트는 딸 폴리가 유전적으로 자신의 피를 물려받았음을 곧 깨닫습니다.
폴리는 폭력에 대해 전혀 낯설어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두려운 상황에서도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때론 아빠보다 먼저 행동하기도 합니다.
물론 늘 품에 안고 있는 곰 인형에 집착할 정도로 11살 소녀다울 때도 있지만,
폴리의 내부에는 분명 킬러로서의 본능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사형집행 철회를 위한 두 부녀의 고된 여정은 어느 시점에서 막다른 벽에 이릅니다.
아무리 아리안 스틸의 현장 조직에 타격을 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사건 초기부터 네이트 부녀를 쫓던 존 박 형사와 부패한 보안관 하우저가 등장하고,
아리안 스틸과 적대 관계에 놓여있는 폭력조직 라 엠므까지 끼어들면서
네이트와 폴리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극적인 상황을 위한 설정임은 이해하지만 역시 폴리의 캐릭터에 이입하긴 쉽지 않습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킬러로서의 재능과 본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아버지에 의해 (속성으로) 살인기계 교육을 받고 현장에 뛰어들어 활약하는 모습은
영화 ‘레옹’의 히로인인 마틸다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위화감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가가 나름 수위를 조절했다는 인상을 여러 장면에서 받긴 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폭력을 소화하는 폴리의 캐릭터는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나름 액션스릴러로서의 미덕을 잘 갖춘 작품이긴 하지만,
사건에 비해 인물들의 캐릭터가 좀더 깊이 있게 그려지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고,
(주조연 모두 겉은 그럴싸한데, 과거나 인격 등이 너무 표피적으로만 묘사됐다고 할까요?)
그 다음으로 아쉬웠던 점은 적잖은 오타와 종종 덜컹거리는 느낌을 받은 번역이었습니다.
눈에 아주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왠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원제인 ‘She Rides Shotgun’과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 번역 제목도 아쉬웠는데,
내용만 보면 은유적으로는 적절한 제목인 듯 보이지만
워낙 비슷한 류의 제목이 범람한 탓에 좀처럼 독자에게 각인되기 어려워 보였고,
그래서 차라리 좀더 원제에 가깝게 정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진정할 킬러로 성장할 폴리의 ‘프리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혹시라도 성인이 된 폴리가 주인공이 되어 다시 독자들을 찾아온다면
얼마나 잔혹하고 냉정한 킬러로 성장해있을지 사뭇 궁금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