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10미터 앞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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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 다치아라이 마치가 주인공을 맡은 작품으로는 왕과 서커스에 이은 두 번째이고,

그녀가 조연으로 등장한 안녕 요정까지 치면 세 번째 만남입니다.

안녕 요정에서 다치아라이는 현실주의적 사고에 카리스마+추리력까지 갖춘 여고생이었는데

그 후 자신의 재능과 희망을 살려 기자로 성장한 것입니다.

네팔에서 겪은 사건을 그린 왕과 서커스에서 그녀를 20대 후반이라고 소개한 걸 보면

이 작품은 아마도 네팔에서 돌아온 뒤의 다치아라이를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두 여섯 편의 수록작이 실려 있는데,

첫 편만 도요 신문 소속이고 나머지는 모두 프리랜서 라이터 신분입니다.

왕과 서커스가 그랬듯 이 작품 역시 언론인으로서의 다치아라이의 성장담과 함께

그녀가 취재하는 사건사고 속에서 크고 작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경찰과 언론이 헤매는 동안 자신만의 추론으로 실종자를 찾아내기도 하고,

살인범을 잡기 위해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기도 하며,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소한 단서에서 출발하여 진실을 밝혀내기도 합니다.

 

이런 미스터리 서사와 함께 매 작품마다 기자 정신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소위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기자의 눈을 거쳐 정제된 진실사이의 간극에 대한 고민,

또 자신이 알아낸 사실에 대해 대중에게 알릴 것인지에 대한 갈등 등

탐정과 기자의 교집합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수록작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안녕 요정에서 다치아라이와 친구를 맺었다가

조국 유고슬라비아로 돌아간 뒤 소식이 끊긴 17살 소녀 마야의 오빠가 등장하는데,

마야와 헤어진 뒤 10년 후 기자에 대한 반감을 가진 오빠와 만난 다치아라이는

꽤나 복잡한 심경으로 기자라는 직업 전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매 작품마다 다치아라이는 꽤 냉정하고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동행하게 된 동료 기자나 사건 관련자들은 다치아라이의 그런 태도에 거리감을 느끼는데,

읽는 독자 역시 다치아라이는 왜 늘 화가 나있는 것 같을까?”라는 위화감을 갖게 됩니다.

안녕 요정에서 센도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10대의 다치아라이가 딱 그런 모습이었던 반면,

기자로서 성장 중인 왕과 서커스에서는 이토록 차갑고 냉정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설정은 주인공의 카리스마를 배가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독자로 하여금 응원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면에서는 다소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다치아라이가 설파하는 기자 정신이 다소 모호했다는 점인데,

다 읽고도 다치아라이만의 기자관()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남았다는 뜻입니다.

어떤 때는 대중이 알고 싶은 것을 알려야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와는 사뭇 결이 다른 가치관을 피력할 때도 있고

때론 대중과는 무관한 외골수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다소 형이상학적이거나 일관성이 부족해 보였다고 할까요?

 

물론 이 작품이나 왕과 서커스모두 기자의 길에 대한 논쟁을 다루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냉정하고 대쪽 같기만 하고 그녀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소 모호했던 탓에

자꾸만 작품 속 미스터리에 좀더 관심이 갔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작품 성격 상 미스터리가 대단하거나 복잡할 리는 없었고,

간혹 흥미로운 설정이나 엔딩이 있긴 했어도 대부분 일상 미스터리 수준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다치아라이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계속 나올 것 같은데,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다치아라이가 좀더 쉽고 선명한 캐릭터였다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왠지 일부러 베일에 쌓인 듯, 다소 현학적인 듯, 전지적 능력을 가진 듯 그려진 탓에

좀처럼 인간적으로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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