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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없어도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 국가대표 육상선수를 꿈꾸던 20살의 이치노세 사라.
하지만 옆집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인 다이스케가 몰던 차에 치여 왼쪽 다리를 잃고 만다.
절망의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특수한 의족을 한 채 경기에 나선 장애인 외국선수를 보곤
다시금 재기하여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의욕을 다진다.
그 무렵, 사라를 다치게 만든 옆집의 다이스케가 피살된 채 발견된다.
이누카이 형사는 사라와 그 가족을 의심하지만 뚜렷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
더구나 다이스케가 살해당하기 전 사라와의 소송을 대비해 고용한 변호사가
경찰과 검찰의 ‘공공의 적’인 미코시바 레이지라는 사실을 알곤 경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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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한 줄거리대로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나는 왼쪽 다리를 잃은 사라가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재기에 힘쓰는 과정이고,
또 하나는 사라를 다치게 만든 장본인이 피살당한 사건을 수사하는 미스터리입니다.
사라의 재기 과정은 ‘장애인이 된 유망주의 절망-의지-노력’이라는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특수한 의족과 체계적인 관리와 극한에 가까운 열정이 한데 뭉치는 과정이 집요하게 그려져서
‘불굴의 정신의 승리’만 강조하는 상투적인 감동 서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건네줍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간 대목은 ‘다이스케 피살사건’이었는데,
그 이유는 사건 자체보다도 형사 이누카이와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나카야마 시치리의 스탠드얼론에 그의 대표적 주인공 둘이 ‘특별출연’을 한 셈인데,
주연도 아니고 카메오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연이라기엔 비중이 작은 편도 아니어서
이들의 대결을 지켜보는 일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메인 서사가 ‘사라의 재기’이기 때문에 살인사건은 소소한 반전으로 마무리됐고
덕분에 두 사람의 극적인 대결을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은 건 사실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안녕, 드뷔시’처럼 젊은 여성이 치열한 투쟁 끝에 뭔가를 얻어내는
속 시원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편집자의 요청 때문에” 집필한 작품이라는데,
‘안녕, 드뷔시’를 읽지 않아서 어떤 맥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읽은 나카야마 시치리 작품 가운데
재미나 긴장감 등 여러 면에서 만족도가 가장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만족감 100%였던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느 날 갑자기 별 정성도 들이지 않고
공장장처럼 찍어내듯 쓴 작품을 읽었을 때의 실망감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상투적인 감동 서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긴 해도 ‘사라의 재기 과정’은 판타지에 가까웠고
너무 많은 비현실적인 행운이 따라준 탓에 오히려 위화감이 들 정도였으며,
‘다이스케 피살사건’은 마지못해 감동을 주려는 반전이 평소의 나카야마 시치리답지 않아서
심하게 말하면 무성의함마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육상선수 사라는 과연 다시 날갯짓할 수 있을까?’라는 출판사의 카피도,
‘젊은 여성의 투쟁과 성공이 담긴 속 시원한 이야기’라는 작가의 의도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아무래도 나카야마 시치리의 독한 이야기와 강한 반전에 익숙해진 탓에
소위 ‘감성 미스터리’라는 이 작품의 서사가 저와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아쉬움은 곧 출간될 예정인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을 통해 달랠 생각이지만,
설령 ‘또! 감성 미스터리’라고 해도 나카야마 시치리의 신작소식을 들으면
일단은 어김없이 찾아 읽게 될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일 듯 싶습니다.
물론 ‘공장장’ 분위기가 너무 잦아지면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소원해질 수밖에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