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꽤 오래 전 기욤 뮈소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아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 지인에게 기욤 뮈소 양장본 전집 세트를 선물 받았는데,

첫 만남부터 어그러진 터라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결국 몇 년째 책장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2018년에 출간된 장르물 중 놓친 작품들 목록을 정리하다가

어찌 된 일인지 아가씨와 밤이 불쑥 눈에 들어왔고,

큰 기대 없이 언제라도 중도 포기할 생각으로 기욤 뮈소에게 재도전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1992, 생텍쥐페리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살인과 실종이 이야기의 출발점이고,

25년 후인 2017년에 개시된 누군가의 복수누군가의 진실 찾기가 이야기의 몸통입니다.

25년 전의 살인에 연루된 토마와 막심은 누군가로부터 복수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성공한 소설가인 토마와 전도유망한 정치인 막심은 누군가를 찾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이 미처 몰랐던 그날의 진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던 중 토마는 복수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이 더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불어, 25년 전 그날의 진실 가운데 자신이 알고 있는 건 일부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일단 재미있습니다.

미스터리 서사도 탄탄하고, 전쟁 같은 삶을 살아온 여러 인물들의 캐릭터도 매력적인데다,

소위 막장에 가까운 다양한 코드들이 난무해서 끝까지 눈길을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막장 코드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라 자세한 언급은 못하지만,

“‘오이디프스 왕에 대해 막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는 드물다.”라는 번역자의 말대로

이 작품 역시 인물, 사건, 구성, 개연성 등 여러 토대들이 정교하고 튼튼하게 설정돼있어서

단순한 막장극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 비극이 품고 있는 원초적인 매력이 더 돋보였다고 할 수 있는데,

25년 전,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주위 사람들을 파국으로 이끈 것은 물론

자신도 실종사건의 주인공으로 전락해버린 10대 소녀 빙카 로크웰과

그녀를 숭배하다시피 사모했던, 하지만 그로 인해 자기 손에 피를 묻혔던 주인공 토마는

스스로 파국을 자초하는 인물을 그린 그리스 비극에 딱 어울리는 어린 주인공들이었고,

두 사람 주위의 인물들 친구, 가족, 이웃 역시 비밀과 거짓말을 잔뜩 내재하고 있는

매력적인 조연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꿔서 말하면 무척 통속적인 이야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원래 기욤 뮈소의 작품이 이런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강한 통속적 서사에 살짝 놀란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든 그만큼 페이지는 잘 넘어가고, 거듭된 반전도 상투적이긴 해도 흥미롭습니다.

다만, 막판에 불꽃놀이처럼 연이어 폭로되는 몇몇 진실은 역시 막장을 떠올리게 했고,

진범은 왜 25년이 지난 후에야 복수를 시작했는가?’에 대한 대답은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소개글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영상물로 보면 막장성과 억지스러움이 더 배가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작품 덕분에 책장 속의 기욤 뮈소 양장본 전집 세트를 꺼내볼 마음이 생긴 건 사실인데

과연 어떤 작품들이 제게 호평을 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첫 만남 때의 실망감을 다시 맛볼 수도 있고,

기욤 뮈소를 완전히 재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아가씨와 밤만 놓고 생각해보면 일단은 약간의 기대감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을 읽을 생각이라면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은 미리 읽지 말기를 권합니다.

대략의 스토리를 넘어 크고 작은 스포일러를 출판사 스스로 너무 많이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 어딘가 20세기 냄새를 폴폴 풍기는 표지 디자인도 굉장히 거슬렸는데,

주제도 미덕도 어느 하나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올드한 선정성에만 기댔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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