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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소녀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2
오카모토 기도 외 지음, 신주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미스터리의 초창기 작품들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1889년에서 1930년대 후반 사이에 발표된 작품들이니
출판사 소개대로 일본에 서양 추리소설이 유입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내용이나 형식 모두 꽤 파격적인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앞서 출간된 ‘세 가닥의 머리카락’이 시리즈 첫 작품이고,
이후 일본의 패전 직후까지의 추리소설을 담은 작품이 한 편 더 나올 거라고 하는데,
각 작품마다 나름의 테마를 갖고 편집됐다고 하니 기호에 따라 골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명의 작가가 발표한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직접 읽어보진 못했어도 들어본 적은 많은 ‘한시치 체포록’의 작가 오카모토 기도는
표제작인 ‘단발머리 소녀’를 비롯해 세 편의 작품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주인공 한시치와 아들 젠파치가 기기묘묘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이야기들인데,
얼마 전 읽은 교고쿠 나츠히코의 ‘후 항설백물어(上)’를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들은
미스터리와 괴담이 적절히 뒤섞여서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다섯 편의 작품이 실린 사토 하루오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지만
에도가와 란포가 칭송한 미스터리 작가라고 해서 꽤 놀랐습니다.
미스터리보다는 그로테스크+판타지 스타일이 대부분이었고 대체로 흥미로운 내용이긴 한데
아무래도 ‘딱 떨어지는 엔딩’이 아니라 모호하고 기괴한 결말들이 대부분이라
말 그대로 고전으로서의 맛은 느낄 수 있었지만 딱히 호감 가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한 편밖에 수록되지 않아서 그 스타일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고다 로한은
무성영화의 변사 말투 같은 독특한 문장이 시선을 끌었는데,
미스터리이긴 해도 고전적인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에 좀더 방점을 찍은 느낌이라
그야말로 전형적인 19세기 작가의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접하기 힘든 초창기 일본 추리소설을 편집한 기획 자체는 무척 흥미로웠는데,
개인적으로는 좀더 ‘정통 미스터리’에 가까운 작품을 선정했더라면, 하는 바람이 남았습니다.
특히 다섯 편이 수록된 사토 하루오의 경우 꽤 파격적인 서사를 다루는 작가인 건 맞지만
초창기 일본 추리소설을 음미하려던 독자에겐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오카모토 기도의 작품들이 ‘신기한 골동품’처럼 재미있게 읽힌 건
아마 저만의 경험은 아닐 거란 생각입니다.
이 시리즈의 첫 편인 ‘세 가닥의 머리카락’이 번역, 번안 추리소설 위주였고,
이후 출간될 작품이 ‘순문학 작가에 의한 예술적 경향의 탐정소설’ 위주라고 하는데,
희귀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니 만큼 관심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이 특별한 기획이 좀더 확장돼서
그 시대의 ‘정통 미스터리’에 가까운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표현에 맞게 가독성을 중시하며 재번역을 시도했다.”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전혀 올드한 티가 나지 않는 깔끔한 번역 덕분에 큰 불편이나 거북함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건
특별한 기획만큼이나 칭찬해주고 싶은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