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항설백물어 - 상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8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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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항설백물어속 항설백물어가 아직도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신간인 후 항설백물어부터 읽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또는 호러풍의 에도 시대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미야베 미유키의 미야베 월드 2막 시리즈에 푹 빠지기도 했지만

교고쿠 나츠히코의 괴담은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꽤 기대를 하고 읽었습니다.

 

하룻밤 사이 물밑으로 가라앉은 섬 이야기(붉은 가오리),

얼굴 모양을 한 채 사방에서 출몰하는 괴이한 불덩이 이야기(하늘불),

영생과 지벌의 화신인 뱀에 대한 이야기(상처 입은 뱀) 등 세 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소재와 배경인 섬, , 뱀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괴담과 전설의 단골메뉴이긴 하지만

일본 특유의 문화적 유산과 정서 덕분에 그 기이함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이야기 자체도 매력적이고 밑바탕에 깔린 오랜 전설이나 괴담 자체도 흥미롭지만

개성 강한 화자들, 은근슬쩍 끼어든 미스터리,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한 방식 덕분에

각각 중편 정도의 분량임에도 단편처럼 금세 마지막 장에 이르곤 했습니다.

 

이야기는 대체로 이런 식으로 구성됩니다.

괴담이나 전설에 대해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네 남자가 특정 소재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이웃에 사는 80살을 훨씬 넘긴 한 노인에게 자문을 구하러 갑니다.

그럼 그 노인은 자신의 경험과 견문과 지식을 통해 네 남자의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간 후 노인은 먼 친척뻘인 젊은 여자에게 진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도쿄 경시청 일등순사지만 괴담과 고전을 좋아하는 겐노신이 논쟁거리 괴담을 들고 오면

전직 막부 가신 요지로, 검술도장을 운영하는 쇼베, 서양 문물을 경험한 쇼마가 가세하여

때론 갑론을박을, 때론 민망할 정도의 면박을 주고받으며 끝없는 논쟁을 벌이는데,

항상 이들의 결론은 야겐보리 부근에 사는 신비한 노인 잇파쿠 옹에게 가자!”입니다.

잇파쿠 옹은 젊은 시절 괴담과 전설이 있는 곳이라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기록하곤 했는데,

그렇게 쌓인 견문과 경험이 워낙 방대해서 늘 네 남자의 자문역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괴담집이다 보니 어느 이야기에서든 정답이란 없습니다.

때론 상식이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결론이 나올 때도 있고,

그건 그냥 전설 또는 항설입니다.”라고 오픈된 결말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사실 정답 없는 모호함이 기담의 매력이긴 하지만,

하늘불상처 입은 뱀의 경우 현실 속 사건과 연결되기도 해서

미스터리로서의 맛을 듬뿍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옛날 어딘가에 이런 괴담이나 전설이 전해져온다.”라는 나열식 소개가 아니라

잇파쿠 옹이 오래 전 직간접적으로 겪은 실제 사건이 언급되기도 하고,

때론 도쿄 경시청 일등순사 겐노신이 현재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 끼어들기도 해서

일본 괴담과 전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비현실적인 상황을 소재로 한 탓에

간혹 맥락이나 문장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한데,

제 경우 세세하게 다 이해하려고 들지 않고 과감하게 넘어가곤 했지만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두 편의 전작 역시 네 명의 남자와 잇파쿠 옹이 등장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비슷한 형식과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안 그래도 올해 미야베 월드 2막 완독을 소소한 목표로 잡아놓은 상태인데,

거기에 곁들여 책장 속에 갇혀 있는 항설백물어 시리즈도 구출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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