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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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수전 라일랜드는 인기 추리소설가의 신작 초고를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다.

50년대 영국의 조용한 마을을 배경으로 대저택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을 다뤘는데,

문제는 명탐정의 수사가 한창 펼쳐지다 결정적인 대목에서 원고가 뚝 끊겼다는 점.

어찌 된 일인지 상사에게 연락한 그녀는 작가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어떻게든 책을 출간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수전은 원고 뒷부분을 찾아 나서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

수전은 사라진 원고를 찾던 편집자에서 작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탐정으로 변신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읽을까, 말까 꽤 오래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노골적인 고전적 제목에,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이 제일 큰 이유였는데,

일본에서 발표된 각종 미스터리 랭킹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마음을 고쳐먹고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방대한 분량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엔 두 개의 사건, 그러니까 따로 분리할 수도 있는 두 작품이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인기 추리소설가 앨런 콘웨이가 집필한 소설 속의 의문의 죽음들이고,

또 하나는 현실에서 벌어진 인기 추리소설가 앨런 콘웨이 본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입니다.

620여 페이지 중 절반 정도가 앨런이 쓴 미완성 소설 원고, 소설 속 소설이고,

나머지는 편집자 수전 라일랜드가 사라진 마지막 챕터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탐문하는 동시에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는 소설가의 죽음의 진실을 캐는 내용입니다.

 

독자의 흥미를 발동시키는 대목은 소설 속 인물, 사건, 설정

현실 속 작가 앨런 콘웨이의 그것들과 신기하리만치 접점이 많다는 점입니다.

사라진 원고를 찾아 앨런의 저택을 방문하고 주변 인물들을 만나던 수전은

앨런이 소설 속 공간적 배경은 물론 인물 설정까지 실제 현실을 반영한 사실을 눈치 챕니다.

문제는,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가 아니라, 다소 냉소적이고 비아냥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 소설에서 등장인물 모두를 동기가 충분한 용의자로 그린 것과 마찬가지로

앨런 본인 역시 사방에 살의를 가진 적들을 양산해왔다는 점에서

수전은 앨런의 죽음이 공식발표(시한부 삶을 비관한 자살)와는 거리가 멀다고 확신합니다.

 

결국 사라진 원고를 찾으려던 수전의 행보는 본의 아니게 탐정의 수사로 전환됐고,

앨런 주변의 수많은 인물들을 만나면서 자신만의 용의자 리스트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물론 수전의 수사에 가장 중요한 참고자료는 앨런이 쓴 미완성 소설입니다.

소설 속 인물이나 사건을 현실과 대비시켜가며 진행하는 수전의 수사는

때론 소설과 현실을 헷갈리게 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소한 단서들과 운명적 상황이 조합되며 수전은 진실을 얻어내고 맙니다.

 

사라진 원고 속 범인은 누구일까?’, ‘현실 속 작가의 죽음의 진실은 무엇일까?’라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팽팽한 미스터리의 힘은 방대한 분량의 부담을 충분히 상쇄합니다.

물론 ‘500페이지면 충분했다라는 분량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별 0.5개를 뺀 건 맞지만

읽기도 전부터 느꼈던 부담감에 비하면 어느 정도는 감당할 하다는 생각입니다.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지만 소설과 현실을 교묘히 연결시켜가며

수많은 인물과 복잡한 상황을 직조한 작가의 설계는 말 그대로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특히 각 인물마다 과거사, 갈등, 탐욕, 죽은 자와의 관계 등을 꼼꼼하게 설정함으로써

(소설과 현실 모두에서) 누가 범인이라 해도 전혀 억지스럽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등장인물 대부분을 유력한 용의자 후보로 설득력 있게 설명한 대목에서는

이 작가가 살인을 저지른다면 누구도 해결 못하겠군.’이란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습니다.

 

고전의 맛과 현대물의 매력을 담은 내용만큼이나 구성의 절묘함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라

일본 미스터리 랭킹에서 4관왕을 획득한 이력이 충분히 이해되기도 하지만,

작품 전반에 걸친 다소 만연체에 가까운 느슨함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진 독자에게는 강추,

속도감과 잔혹함을 미스터리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독자에게는 반반 정도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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