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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유리 ㅣ 낭만픽션 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196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소재로 한 연작단편집입니다.
모두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단편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2부작인 경우도 있습니다.
당연히 다이아몬드 반지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들을 다루지 않았을까, 예상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 반지의 소유자들이 겪은 사건들을 다뤘을 뿐
반지 자체가 이야기의 발단 혹은 사건의 동기로 작동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완벽한 무결점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라는 희귀하고 고가인 물건의 소유자들인 만큼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탄광 부자, 넓은 땅을 소유한 부농, 정계출신의 기업회장, 군납비리로 부를 축적한 자 등
구매자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많은 돈을 움켜쥔 자들이고,
그들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 받은 자들은 금수저든 게이샤든 욕정의 대상이든
역시 평범하지 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일본의 패전을 전후로 한 시기이다 보니
‘부유층, 탐욕과 집착, 살인’이라는 코드들이 날것 가까운 형태로 그려지고 있는데,
미스터리 자체가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고 충격적인 반전을 지니지도 않았지만
혼돈으로 가득 찬 아날로그적인 시대상 덕분에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백제의 풀’과 ‘도망’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근무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들입니다.
물론 일본인의 관점에서 기술된 조선의 사찰이나 거리의 풍경은 불편했던 게 사실이지만
패전 직전 조선 내 일본인들의 탐욕과 이기심이라든가 생존을 위한 권모술수 등
이야기의 완결성이나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위기감은 가장 매력적인 작품들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겐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 있지만
패전 전후의 시대상이라든가 탐욕 또는 정열 같은 인간의 민낯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라면
출퇴근길이나 여행길에 소소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단편집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