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이트 스토커 ㅣ 스토리콜렉터 69
로버트 브린자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에리카 포스터 경감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얼음에 갇힌 여자’에서 비극적인 사고로 인한 공백기를 마감하고 컴백했던 에리카는
경찰 내에서 위아래 할 것 없이 ‘굴러온 돌 vs 박힌 돌’의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권력층 가문이 연루된 사건을 다루느라 갖가지 압력과 좌충우돌하곤 했습니다.
꽤 어려운 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지만 에리카의 반골기질과 돌직구 성정은 여전하고,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일부 고위간부의 삐딱함도 여전한 상태에서
이번에는 사회적으로 꽤 성공한 남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사건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 역시 에리카는 초반부터 윗선들과 부딪힙니다.
기이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발견된 사체들과 현장에서 발견된 동성애 관련 단서들로 인해
윗선들은 ‘우발적인 게이 치정사건’으로 방향을 잡으려 하지만,
에리카는 누군가 희생자들을 오랫동안 관찰했고 치밀한 계획 끝에 저지른 범행이라 여깁니다.
문제는 연이어 사체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에리카의 수사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한 점입니다.
결국 수사에서 배제되는 위기에 처하지만 에리카는 끝내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합니다.
전작인 ‘얼음에 갇힌 여자’의 서평 말미에 “만족감은 8, 아쉬움은 2.”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나이트 스토커’는 전작의 아쉬움이 대부분 해소된 작품입니다.
그녀의 캐릭터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작전 도중 남편과 동료를 잃은 심각한 트라우마입니다.
하지만 전작에서는 이 트라우마가 팩트 나열식으로만 그려져서 다소 공감이 안 됐는데,
두 번째 작품이라 그런지, 혹은 좀더 섬세하게 그 트라우마가 그려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에리카에 대해 어느 정도는 편하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소 기계적으로 보였던 루이셤 경찰서 사람들과의 갈등 역시 좀더 자연스럽게 묘사돼서
그녀의 분노나 위기가 훨씬 더 사실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적, 중재자, 아군으로 확실하게 구분된 루이셤 경찰서 사람들과의 갈등 또는 협력은
사건에 못잖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유는 달라도 이번 역시 “만족감은 8, 아쉬움은 2.”라는 결론은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의 아쉬움은 에리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사건 자체에 기인한 것입니다.
우선, 큰 그림만 놓고 보면 사건 자체가 너무 단선적이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범행 수법도 특이하고, 희생자들의 신원도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설정돼있지만
탐문이나 목격자 찾기 외에 에리카가 딱히 뭔가 수사할 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고,
에리카의 ‘계획범죄’ 주장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는 너무 쉽고 우연히 발견됩니다.
그런 탓에 부족한 서사를 메우기 위해 혼선을 주는 사건을 설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메인 스토리와 잘 섞이지 못하고 따로국밥처럼 보이기만 했던 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다 읽은 뒤에 ‘에리카의 수사’보다 경찰 윗선들과의 갈등이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아마도 이런 사건 자체의 단순함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또, 범인의 캐릭터도 아쉬운 대목이었는데,
출판사 소개글대로 “공공연한 가정 폭력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피폐한 삶과 상처,
쉽게 회복되기 힘든 트라우마, 그리고 그것이 양산하는 또 다른 폭력”이란 주제는 이해됐지만
그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범인을 너무 과대포장한 나머지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한 점,
또, 범인의 범행 수법이 너무 정교하고 완벽한 점은 수시로 위화감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프로 킬러도 아닌데 마치 훈련된 테러리스트처럼 능숙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에선
범인에 대한 동정심이나 공감은 사라지고 “어떻게?”라는 의아함만 남기도 했습니다.
시리즈 첫 편인 전작에 비해 거칠고 기계적인 부분들이 많이 매끄러워졌고,
부당한 처우에 대해 에리카가 직격탄을 날리며 경찰서를 떠나는 엔딩 덕분에
다음 작품 자체가 기대되는 것은 물론 그녀의 입지가 어떻게 그려질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흠뻑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시리즈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매번 “만족감은 8, 아쉬움은 2.” 정도의 재미는 보장한다는 생각입니다.